영어를 한국 땅에서 그럴싸하게 변통하는 일을 콩글리시라고 한다면, 한시의 7언스러운 것을 마치 고전적인 전거를 지닌 것처럼 박음질해내는 것은 뭐라고 해야할까. 여하튼 유홍준 전문화재청장이 명저 <문화유산답사기>의 부제로 달아놓은 '인생도처유상수'는, 처음에야 우스개였을망정 이젠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에스프리가 되었다.
가만히 보면 이보다 더 쉬운 말은 없다. 인생 살다보면 도처에 상수(한수 위)가 있다. 이건 어쩌면, 오만해보지 않은 사람은 깨닫기 어려운 경지이다. 내가 최고의 수라고 생각했는데 내 이마를 때리는 바둑판의 결정적 한 수처럼 살이의 도처에서 고수를 만나고 그때마다 자기가 무너지며 조금씩 득도해가는 일. 이것은 어쩌면 부처처럼 한 순간 대박을 쳐서 깨달음의 벼락부자가 되라는 것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쥐어터지면서, 고개 숙인 지식의 유연함을 획득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이 지상에 와서 배우고갈 오직 단 하나의 상수인지 모르겠다.
자본주의가 대개 우리에게 가치를 잘못 입력시키는 것이, 높을수록 훌륭하며 귀할수록 값어치가 있다는 관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저 인생도처유상수가 가르치는 것은 낮아질수록 더 지극한 깨달음이 있으며 흔한 것에 세상의 진정한 무엇이 숨어있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유홍준교수의 글과 말을 접하면서 탄복하는 것은, 끝없이 풀어내는 서들서들한 익살 속에서 내가 경계를 낮추고 있을 무렵에, 요즘 말로 '진상 문자'를 데려와 심장을 때리는 점이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