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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실은 오토바이, 먹다남은 음식…인도의 민낯이 예술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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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실은 오토바이, 먹다남은 음식…인도의 민낯이 예술이 되다 수보드 굽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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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거장 '수보드 굽타' 서울전시회 개막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물과 우유를 가득 실은 허름한 오토바이, 먹다 남은 음식과 접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름 드럼통. 인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 수보드 굽타(50)의 작품들이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신성하다"라는 작가의 확고한 가치관이 작품에 오롯이 스며들어 인도 사회의 민낯과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1일 개막한 수보드 굽타 작품 전시회가 열리는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는 작가의 유년시절 기억뿐 아니라 지금도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작고 둥근 캔버스에 남은 음식과 지저분한 접시를 그린 20여점의 작품들은 금장을 두른 액자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작가에게 부엌은 '어머니'를 상징하는 따뜻하고 신성한 공간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남은 음식'을 매우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힌두교는 '여성'을 남성과 비교해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다. 개막에 앞서 방한한 작가는 "어머니는 다른 인도의 어머니들이 그렇듯, 남편과 아들이 식사한 후 남은 음식을 부엌에서 먹었다"고 회상했다. 19세기 말부터 백 년 동안 인도를 지배한 영국인들의 식문화를 연상시키는 식탁의 풍경은, 작가가 인도인으로 자라며 겪어온 경험들도 교차돼 있다.

우유실은 오토바이, 먹다남은 음식…인도의 민낯이 예술이 되다 수보드 굽타, '두개의 불렛(Two Bullets)', 로얄 엔필드 브론즈 캐스팅, 실제 크기, 2014년.


우유실은 오토바이, 먹다남은 음식…인도의 민낯이 예술이 되다 수보드 굽타, '무제', 지름 15cm 액자 속 캔버스 그림, 2013년.


수보드 굽타는 '음식'이 이동하는 수단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도시락 통을 자전거에 싣고 출근하는 아버지, 갠지스 강물을 양동이에 담아 들고 오던 어머니, 우유병을 잔뜩 싣고 거리를 돌아다니던 릭샤꾼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지하 전시장에 마련된 오토바이 작품은 영국의 모터사이클 회사였던 로얄 엔필드의 가장 오래된 제품인 '불렛(Bullet)'을 청동으로 주조한 뒤 크롬으로 정교하게 도금한 우유병들을 매달아 둔 것이다. 로얄 엔필드는 영국 경제의 하락과 함께 인도 자회사에 매각돼 이후 인도에서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을 만드는 회사로 자리 잡았고, 영국으로 역수출까지 하고 있는 '문화적 전복현상'의 한 아이콘이 됐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가난에 벗어나지 못한 대다수의 인도인들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풍경, 동서양 문화가 혼재된 양상을 함께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대리석 드럼통' 작품 역시 인도의 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드러내고 있다. 이탈리아나 그리스 조각상이 연상되는 값비싼 대리석은 사실 인도에서는 아주 흔한 돌이다. 대리석으로 흰색과 검정색 드럼통을 만들어 대비시켜 놓은 작품은 세계적인 석유파동으로 인한 인도의 빈부격차의 심화, 계급 갈등을 나타낸다.


이번 서울 개인전은 아라리오 갤러리의 중국 상하이 개관전과 연계돼 열린 것이다.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옮겨 지난달 29일 새롭게 공간을 연 갤러리는 첫 전시로 수보드 굽타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갤러리 관계자는 "작가는 평생을 인도에 거주하며 경험한 인도인들의 삶과 애환, 역사와 종교의 흔적들을 작품 속에 담고 있다"며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들로 독창적인 조형언어를 만들어 현대미술계의 찬사를 이끌어 내고 있다"고 말했다.


수보드 굽타는 인도에서도 불교의 중심지인 비하르에서 태어나 현재 뉴델리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주요 국제비엔날레에 주목을 받아왔으며 아시아, 유럽, 미국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에서도 전시를 앞두고 있다. 10월 5일까지. 02-541-5701.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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