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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서원터 '수작' 금강령 등 고려불교용구 다량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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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서원터 '수작' 금강령 등 고려불교용구 다량 출토 도봉서원에서 출토된 금동제 금강령 세부 모습.(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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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서울에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인 도봉서원 터에서 고려시대 불교용구 77점이 출토됐다.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은 21일 오전 도봉서원터에서 발굴 조사한 불교용구 유물을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공개했다. 이번에 도봉서원터에서 출토된 불교용구는 총 77점이다. 출토 유물은 금동제 금강저(金剛杵)와 금강령(金剛鈴)을 비롯해 ▲청동제 뚜껑항아리(有蓋壺)와 뚜껑합(有蓋盒) ▲현향로(懸香爐)와 부형대향로(釜形大香爐), 수각향로(獸脚香爐) 등 다양한 형태의 향로 ▲세(洗·세숫대야형 용구) ▲ 향완(향을 피우는 그릇) ▲ 대부완(굽 달린 사발) ▲ 발우(鉢盂), 대접, 숟가락 등 종류가 다양하다.


금강저는 불교의식에 사용하는 불구로, 제석(帝釋)의 번개에 붙였던 이름이었으나 점차 여러 신 또는 역사(力士)의 무기를 지칭하게 됐다. 불교의식에서는 마음의 번뇌를 분쇄하는 보리심(菩提心)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금강령은 금강저의 한쪽 끝에 달린 방울을 의미하며, 금강저와 함께 불구로 사용된다.

특히 이번에 발굴된 금강령에는 오대명왕상(五大明王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함께 배치돼 있는데, 이러한 문양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됐다. 그동안의 금강령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뛰어난 수작으로 판단된다. 또 물고기형 탁설(鐸舌·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방울 안에 매다는 것)은 구슬을 물고 있는 모습이 매우 독특하고 그 예가 드물다. 아울러 현향로와 뚜껑합(유개합) 등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유적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 외에 향완은 고려 시대의 전형적인 전기의 양식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율곡 이이(1536~1584년)의 '율곡전서(栗谷全書)'와 고산자 김정호(미상~1866년)의 '대동지지(大東地志)' 등 여러 문집에 따르면 도봉서원은 1573년 정암 조광조(1482~1519년)를 추존하기 위해 옛 영국사(寧國寺)의 터에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도봉서원은 임진왜란으로 전소했다가 1608년 중건된 후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헐어내기까지 약 260여년간 유지됐다. 1903년 지방 유림이 제단을 복원하고, 1970년에 사우(祠宇)를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우란 선조(先祖) 또는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影幀)을 모셔 두고, 연 수차례에 걸쳐 제향을 행하는 장소다.


발굴조사 결과 도봉서원은 영국사의 일부 건물 또는 기단을 재활용했고, 석축과 속도랑배수시설 위에 조선 시대 건물을 축조한 흔적이 확인됐다. 이번에 공개한 불교용구는 도봉서원터에서 중심에 해당하는 5호 건물지 기단에서 출토됐다. 건물지 기단을 파서 묻은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볼 때 도봉서원 건축 이전에 영국사 건물이 조성될 당시 제의 행위와 관련해 불교용구를 기단부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특별시기념물 제28호 ‘도봉서원과 각석군(道峯書院과 刻石群)’으로 지정된 도봉서원터는 도봉구청이 수립한 복원정비계획에 따라 유적의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2012년 5월부터 9월 초까지 발굴조사를 시행했다. 발굴조사단은 "도봉서원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 지역에서 불교가 매우 번성하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화려하고 뛰어났던 고려 시대 금속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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