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동북아 해군력 경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변수는 북극곰 러시아다. 옛 소련 붕괴 후 해군력이 거의 궤멸되다 시피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석유를 판 돈으로 다시 전력증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자체 수상 함정과 잠수함 건조는 물론, 프랑스에서 강습상륙함을 수입하는 등 해군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전력 증강에 나설 수 있는 것은 러시아가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푸틴의 행보는 동북아 전력지평에서 핵심 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러시아의 태평양 함대에 배치될 예정인 미스트랄급 헬기탑재 항모 도입을 저지하기 위해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밀월관계 맺은 러시아=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3월17일 국가주석직에 오르자 마자 가장 먼저 러시아를 국빈 방문했다. 시 주석은 3월22일 러시아 땅을 밟고 양국 관계 현안을 논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두 달 뒤인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시진핑 주석의 초청으로 20~21일 방중해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교류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푸틴 대통령과 시주석은 공동성명에서 양국 관계가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쉽의 새로운 단계로 발전했으며 양국의 국제적 지위와 영향력을 제고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방중 기간 동안 4000억달러 규모의 천연가스 공급계약에 서명했다. 중국은 30년 동안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어 좋았고 러시아는 툭하면 ‘제재’ 카드를 꺼내드는 유럽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계약이었다. 요즘 말로는 윈윈(상생) 계약이었다.
두 나라 사이가 좋아진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동중국해서 공동 군사훈련을 벌여 미국과 일본에 강력한 ‘억지 메시지’를 전달했다. 러시아는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분쟁에서 러시아 편을 든다는 것과 마찬 가지였다.
두 나라는 시리아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는 유엔 결의안에 비토권을 행사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역시 러시아 편을 들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밀월’ 수준의 관계를 맺은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 관계가 파탄나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중국에서 ‘동지’를 발견한 것이다.
중국도 마찬 가지다. 둘째는 중국이 아시아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의 ‘위협’에 직면함에 따라 러시아와 함께 미국 유일의 지배체제 아닌 ‘다극체제’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은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에서 이기려면 최소한 북측 변방은 조용해야 한다. 러시아 역시 미국 주도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하면서 숨통을 죄어오는 탓에 국가 안보를 수호해야 한다. 그런데 과거에 비해 러시아의 군사력은 많이 약해 듬직한 우군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현재 초미의 관심사는 이 같은 관계가 중·러 동맹으로 발전하느냐다.
중국 명문 칭화대 옌쉐퉁 교수는 양국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오랫 동안 지속할 수 있다면 두 나라는 중·러 동맹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 중의 한 사람이다. 옌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동맹국들이 두 나라로부터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미국 주도의 서방 블록의 회원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방은 러시아를 신뢰하지 않으니 러시아는 중국 편을 들지 않을 수 없으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중국의 지위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지지를 받지 못하도록 하고 ‘쇠퇴하는’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에 의존하는 해양균형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에 압박을 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중러 동맹은 양국에 향후 10년 내지 20년 간 혜택을 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물론 반대의견도 많다. 아시아 각국과 우호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러시아는 중국이 일본과 영토 분쟁을 치를 때 중국 편을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동맹은 불가능하다는 게 그 예이다.
◆미스트랄급 도입하는 러시아=러시아는 미국에 비해 현격하게 처진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방함대와 태평양함대에 새로운 수상함정과 핵잠수함을 건조배치하고 대잠수함 작전기를 개량해 해군에 인도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띠는 게 프랑스에서 2척의 미스트랄급 헬기탑재 항모를 도입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2011년 6월 16억달러에 2척을 도입하기로 했다. 1번함인 블라디보스토크함은 올해 말에 인도받아 태평양함대에 배치하고 2번함인 세바스토폴함은 2015년에 인수할 예정이다. 러시아 태평양 함대가 새 함정을 인수하는 것은 옛 소련 붕괴 이후 처음이다.이를 위해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전용 기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1번함 인도시기가 가까워짐에 따라 태평양 국가인 미국과 일본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말레이시아 민항기 격추 사건 이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민병대에 무기를 공급했다며 미국은 제재를 가하고 프랑스에 인도하지 말 것을 종용하고 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지난 7월 29일 프랑스의 장 이브 르 드리앙 국방장관에게 “미스트랄급 판매는 일본의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는 미스트랄급이 헬기 16대, 상륙정 4대, 40대의 주력전차나 장갑차 70대를 탑재하고 450명의 병사를 승선시키는 공격 항모이기 때문이다.헬기는 최대 30대 운용할 수 있다. 길이 199m,너비 32m,높이 64.3m, 표준배수량 1만6500t, 만재 2만1300t이다. 속력 19.8노트(시속 35km)다. 이는 일본의 이즈모(248m,2만7000t)보다는 50미터 정도 짧고 배수량도 작은 크기다. 한국의 강습상륙함 독도함(197m)과 비슷한 크기와 속도를 자랑한다. 그렇더라도 러시아와 일본은 북방 4대 섬을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러시아는 또 대잠 초계기 전력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의 항공기 제작사인 일류신은 지난 7월15일 탐색 추적 능력을 대폭 강화한 IL-38N 대잠 초계기를 러시아 해군에 인도했다. 일류신은 5대의 초계기를 계량해 러 해군에 인도할 예정이다.
◆러 해군, 잠수함 구축함 등도 현대화=러시아의 태평양 함대는 현재 1척의 바랴그급 미사일 순양함, 4척의 우달로이급 구축함, 1척의 소브레메니급 구축함, 5척의 델타급 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 아쿨라급 핵잠수함 4척,오스카2급 5척을 비롯한 수 십 척의 잠수함으로 구성돼 있다.
러시아는 헬기 탑재 항모를 프랑스에서 건조하는 2척 외에 2척을 자체 건조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또 태평양 함대에 배치할 최신형 스텔스 초계함인 스테레구시급 코르벳함인 프로젝트 20380도 여러 척을 극동지역 아무르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다. 해군인도는 2014~15년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함정은 1800~2400t급으로 길이 104.5 m로 구경 mm함포와 Kh-35 대함 미사일, 근접방어기관포 2문, 대잠미사일, 어뢰발사관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헬기도 탑재해 대공, 대함, 대잠전 수행이 가능하다.
러시아는 또 2020년까지 8척의 보레이급과 이를 개량한 보레이 A급 핵잠수함을 건조해 노후한 타이푼급(프로젝트 941)을 대체할 계획이다. 2013년 1번함인 유리돌고루키함을 실전배치했고 올해 2번함 네프스키함을 태평양함대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잠수함은 길이170m, 선체 직경(너비) 13m, 수중 배수량 2만4000t의 대형 잠수함이다.
특히 보레이급은 다탄두 탄도미사일 불라바를 최대 16발까지 탑재해 강력한 공격력을 보유한다. 불라바 미사일은 길이 11.5m, 지름 2m, 총중량 36.8t의 3단 미사일로 사거리는 8000km이며, 폭발력 100~150kt의 탄두 6~10개를 탑재한다.
러시아 해군은 2020년까지 잠수함 24척, 전함 54척을 인수할 계획이다. 24척의 잠수함은 보레이급 8척과 16척의 다목적 잠수함이다. 다목적 잠수함은 개량한 킬로급, 라다급 디젤 잠수함이 포함돼 있다. 앞으로 몇 년 뒤면 태평양은 더 이상 미국 잠수함과 수상함의 안방으로 남아 있지 않을 전망이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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