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지난해 여름은 신흥국들에 시련의 시작이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불안감에 신흥국에 투자된 선진국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충격은 가을을 넘어 올해 초까지 이어졌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는 신흥시장에 올해 가을은 또 하나의 고비(a critical autumn)가 될 수 있다고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0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종료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미 뜨거워진 기준금리 조기 인상 논의가 더욱 가열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선진국의 저금리를 이용해 신흥국에서 투자됐던 일명 캐리 트레이드 자금 유출과 이에 따른 신흥국 자산 가치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말 미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았던 것으로 확인되자 미국 기준금리 조기 인상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신흥국 통화가 된서리를 맞았다. 멕시코 페소화는 5개월 최저치로 떨어졌고, 1주일 새 브라질 헤알화는 2.4%, 터키 리라화는 3% 하락했다.
하지만 FT는 신흥국 통화가 양적완화 축소 논란으로 힘들었던 지난해만큼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 무게를 뒀다.
근본적으로 신흥시장 경제여건이 개선됐다.
FT에 따르면 브라질·인도·남아프리카 공화국·터키·헝가리 등 10개 신흥시장의 무역수지와 경상수지가 추세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10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적자 비율은 2012년 말 4%를 넘었지만 이후 꾸준히 개선돼 3% 이내로 줄었다. 같은 기간 GDP 대비 경상적자 비율도 3%에서 2% 수준으로 줄었다.
신흥국들도 나름 방어벽을 구축했다. 일부 국가들은 유입되는 선진국 자금을 외환보유고로 돌렸다.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할 경우 외환을 풀어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진 것이다.
또 미국에 앞서 선제 기준금리 인상에도 나서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물론 모든 신흥국의 경제여건이 개선된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는 디폴트 상태에 빠졌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의 제재 때문에 경제적 피해가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스탠더드 뱅크의 팀 애시 이코노미스트는 "아르헨티나 디폴트와 러시아 불확실성은 국지적인 충격에 국한되고 있다"며 "러시아 불확실성이 높아져도 투자자들은 또 다른 곳에서 수익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신흥국의 위기가 신흥국 전체의 위기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시티그룹의 리처드 코치노스 투자전략가는 "기관투자가들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규모로 신흥시장, 특히 아시아 시장 자산을 매입하고 있다"며 "기관투자자들은 현재 투자금을 회수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신흥시장 펀드 흐름도 현재까지 양호하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해 들어 신흥국 펀드 자금은 꾸준히 늘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2년 만의 최대 규모인 443억달러가 유입됐다. 지난 3년간 월 평균 유입액 240억달러의 3배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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