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는 한국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에 대해 온갖 상찬을 늘어 놓았다. 그들의 한류사랑은 애뜻하고도 각별해 보일 지경이다. 시진핑은 취임 당시 "세계도 중국을 이해해야 한다"고 할만큼 강력한 중화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시진핑은 부주석 시절부터 해외 순방에 나설 때마다 현지에 설립된 '공자학당'을 찾기로 유명하다. 공자는 중국의 글로벌 문화전략의 핵심이다. 여기서 중화주의와 공자는 샴쌍둥이를 이룬다. 현재 중국은 동북공정을 마무리하고 세계 곳곳에서 공자학당 확대 정책에 혈안이다.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요나라 삼채'전을 보노라면 심경은 더욱 복잡해진다. 요삼채가 중화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요'는 거란족이 발해를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다. 10~11세기에 걸쳐 200여년 동안 동북아를 제패했다가 사라졌다. 이후로 역사 전면에 나선 적이 없다.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다우르족(達斡爾族ㆍDaur)이 거란족의 후예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다만 요삼채만이 폐족의 비애를 오늘에까지 전한다.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 서북부, 즉 동북아에 기원전 2333년, 조선족의 나라 '고조선'이 성립된 이래 숙신족, 조이족, 예족과 맥족, 동호족, 산융족, 호맥족(만주족), 말갈족, 여진족, 거란족 등 수많은 민족이 발원하고 소멸되기를 반복했다. 또한 고조선-고구려-발해, 요나라(거란족), 금나라(여진족), 청나라(호맥족) 등이 강성한 힘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족(韓族) 혹은 한족(漢族)에 흡수돼 명맥마저 온전치 않다.
이들은 모두 유목족 계열로 우리 조상과 친척뻘이다. 심지어는 우리의 핏속에도 스며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단일민족 의식 속에 살아왔으나 실제로는 여러 민족의 혈통이 모여 지금에 이른다. 우리 혈통에는 여진계, 위구르계, 회화계, 일본계, 베트남계 등 오리엔탈계는 다 포함돼 있다. 유전 형질상으로도 60% 북방계열과 40%의 남방계열이 혼재돼 있다. 첨단적인 유전자 검사로도 정체불명의 DNA가 18.5%나 된다. 성씨 분포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275개 중 130여개가 귀화 성씨다. 따라서 우리는 수많은 족속의 피가 혼재된 용광로 혼혈민족이다.
동북아의 패자들이 역사속으로 자취를 감춘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명한 이유는 '중화주의'다. 오랫동안 중국이 '중화주의'라는 이름으로 주변 민족에 대한 역사공정 및 말살정책을 펼친 결과 동북아에서 조선족만이 한족(韓族)이라는 명맥으로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역사를 이어온다. 바로 한 세기 전 중국대륙의 지배자였던 호맥족(만주족)조차 100년도 안 돼 역사를 잃었다. 청나라도 호맥족의 나라가 아니며 그저 중국 역사의 일부일 뿐이다. '중화주의'는 잉카와 마야처럼 정복에 의하지 않고도 강성한 민족을 역사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 증거가 요삼채다. 요삼채는 화장토 위에 황, 녹, 백색의 유약을 사용해 색이 뚜렷하고 화려하다. 주로 일상생활용기로, 일부는 당나라 때처럼 명기(明器)로도 제작됐다. 요삼채를 대표하는 해당화모양 접시는 초원의 화초와 구름 등의 문양이 새겨져 있어 유목민의 정취가 물씬하다. 또한 닭볏모양 항아리는 조형미와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 요삼채는 당삼채에서 영향을 받아 원명삼채로 계승되며 중국 도자기의 본류를 이룬다.
무서우리만치 집요한 중화주의가 남긴 폐족의 유물 '요삼채', 명확히 지금으로서는 중국 유물이다. 중화주의가 그렇게 만들었다. 요삼채처럼 그저 이민족의 박물관에나 전시돼 있는 우리 유물도 수십만점이 넘는다. 다 힘 없고 정신을 잃을 때 빼앗긴 유물들이다. 시진핑의 찬사에 지나치게 의미를 두지 말 일이다.
이규성 사회문화부 선임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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