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란 말은 까닭없이 설레게 한다. 마침 두 글자에 이응 받침이 붙어 두 바퀴가 달린 자전거처럼 서있거나 지나간다. 소리를 닫지 않고 푸근하게 열어두는 두 음절의 울림, 풍경.
풍경의 풍(風)은 바람이다. 풍경과 바람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바람은 보이지 않으면서 나뭇잎을 흔들고 물살을 만들며 구름을 이동시킨다. 바람은 보이는 모든 것들의 움직임을 주재하는 기운 전체를 말하는 것 같다. 생기도 바람이며 활기도 바람이며 대기도 바람이다. 생명도 하나의 바람이다. 풍경은 정물 속에 바람을 넣은 것이다. 거친 바람도 있지만 워낙 고즈넉하여 보일듯 말듯한 바람도 있다.
풍경의 경(景)은 햇살이며 햇빛이며 햇볕이다. 그림자 영(影) 자를 바라보면 아주 신기하다. 경(景)에 세 줄기 빗금이 내려와 있다. 세 줄기 빗금은 햇살의 형상일까 그림자의 형상일까. 어느 경우이든, 경(景)은 햇살 그 자체가 아니라 햇살을 받는 어떤 사물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사물이 햇살을 받을 때 그림자가 지지 않는가. 풍경이라는 말 속에는 '사물'을 가리키는 직설적인 무엇이 없다. 다만 바람과 햇살 뿐이다. 하지만 햇살은 만물을 내리쬐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이미 대상을 가리킨다.
풍경은 시각적인 것이다. 보는 일이 전제된, 대상이다. 보는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다. 우리는 당연히 사물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빛이 먼저 더듬어낸 형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빛이 없는 곳에 있는 사물은 풍경일 수 없다. 빛이 매개하지 않은 사물은 풍경이 아니다. 풍경은 사물 그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빛 그 자체도 풍경의 중요하고 심각한 일부이다.
대상을 읽어주는 일차적인 매체는 빛이지만 사물의 내밀한 동세(動勢)를 불어넣는 것은 바람이다. 그래서 풍경은 바람과 빛의 놀음이며 바람과 빛이 만물과 더불어 일체가 되어있는, 시간의 어느 한 겹이다. 풍경은 시간이며 순간 위에서 영원을 기억하는 한 겹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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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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