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일식이란 시를 읽다가 '개기'라는 말에 생각이 머물렀다. 토털 솔라 이클립스라고 쓴 영어를 번역한 것일까. 개기(皆旣)는 '모두 다'라는 의미이다. 일식의 식(蝕)은 벌레가 파먹는 모양이다. 달이 벌레가 되어 해를 완전히 파먹으면 개기일식이고 지구 그림자가 달을 파먹으면 개기월식이다. 해도 달도 지구도 모두 회전하는 별들이다 보니 어떤 라인에서 겹쳐지면서 이런 일이 생긴다. 해와 달이 완전히 겹쳐진 날, 혹은 달과 지구가 완전히 겹쳐진 날. 옛 사람들은 이런 날을 괴이하고 불길한 징조로 여겼지만, 지금은 그저 신기한 우주 현상으로 범 지구적 볼거리로 환호한다.
옛사람들은 태양계의 다섯 개 별이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것을 분석해 오행으로 삼았고, 달과 해의 움직임과 특징을 음양으로 삼았다. 인간의 운명은 다섯개의 별과 해와 달이 어느 위치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느냐의 문제로 읽었다. 이것이 음양오행이다. 한 인간이 태어나는 모년모월모시에 다섯개의 별은 어느 위치에 있었느냐가 중요하며, 몸 밖으로 나온 인간의 생체시계가 일생을 돌아갈 동안, 별들과 일월이 간섭한다고 믿었다. 우린 별들을 잊고 살지만, 별들은 우리 운명 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해와 달이 겹쳐지는 때, 혹은 달과 지구가 겹쳐지는 때. 우린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해와 달의 실종을 경험한다. 해가 없는 세상과 달이 없는 세상. 우리가 결코 살아갈 수 없는 그 세상 밖의 세상을 그 잠깐 동안에 만나는 것이다. 믿었던 것이 사라지는 저 풍경을, 조물주는 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일까. 그냥 회전 물체의 우연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해가 사라지고 달이 사라지듯, 우리 몸과 영혼을 어느 순간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잠깐의 시간이 더 지나면 기억마저 흩어져버린다. 확고부동해 보였던 것의 완전한 실종과 행방불명. 이것이 우리가 여기 살아있는 일의 그 다음 페이지이다. 개기식(皆旣蝕)처럼, 시간이 나를 먹어버린 것, 이 우주가 나를 먹어버린 것, 그 어둠과 부재의 정체를 그 현상은 우리에게 잠깐 소개하는 것이다. 우린 환호하고 열광하지만, 우주는 존재하고 나는 없는 엄혹한 부재의 예고편이라는 것을 우린 자주 잊는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