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가 변호사 비용 걷고 자격없는 주민 소송인단에 포함해 배상규모 부풀린 혐의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박정희 정권 시절 서울 구로동 일대 농지를 정부에 빼앗긴 농민과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규모와 대상자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과다한 배상금을 챙긴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서울고검은 변호사법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한무섭 구로동명예회복추진위원회 대표(72)를 포함한 40명에 대한 수사를 일선청에 의뢰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서울고검은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을 맡고 있다.
검찰은 한 대표가 소송 참여자를 모으는 과정에서 배상액의 5%를 변호사비 명목으로 요구하거나 구청을 통해 과거 거주자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조회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원고 수십명이 이미 토지를 처분해 당사자 자격이 없는데도 소송에 참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며 이들도 함께 수사대상에 포함했다.
검찰은 한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된것으로 전해졌다.
백모씨 등 291명은 1960년대 초 정부가 구로공단을 조성하면서 농지를 강제로 빼앗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고법은 지난 2월 "국가가 650억5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자를 합한 전체 배상금 규모는 1100억원을 넘어서 단일 사건으로는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사건은 인천지검 부천지청에서 맡을 예정이었지만 수사 대상자가 늘어나면서 서울남부지검으로 이송됐다.
당시 강제로 내몰린 거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일부는 승소를 확정받았다. 그러나 1970년 5월 "정부가 패소하지 않도록 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소송사기 수사가 시작되면서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있던 나머지 주민은 소를 취하했다.
서울고법이 원고 승소판결을 내린 소송은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1970년 중단됐던 소송이 재개된 것으로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40여년만에 또 다시 수사를 받게 된 옛 구로동 농민과 유족들은 검찰의 이 같은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옛 구로동 거주민들의) 소송 자체를 문제 삼으려는 것은 아니며, 사기 등의 혐의를 객관적으로 밝혀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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