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절망에 포위된 경제는 언제쯤 구출될까. 세월호 참사 이후 한 달, 마음과 지갑을 함께 닫아버린 국민 앞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한 세기 전 매슬로우의 이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의식주 다음인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소속감, 존경, 자아실현 같은 말은 박제된 단어였다. 물리적, 심리적 생존을 고민하는 국민들은 즐길 여유, 뽐낼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백화점엔 파리가 날렸다.
2014년 5월, 봄볕 아래 경제는 얼어붙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내수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면서 "세월호 충격에 따른 경제적 고통이 서민형 자영업자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소비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레저업의 신용카드 승인액은 세월호 참사 전후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4월1~15일 12.9% 늘었던 신용카드 승인액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16~30일 사이 -3.6%로 주저앉았다. 요식업의 카드 승인액은 12.7%에서 7.3%로 증가세가 반감됐고, 여객선 운송업은 카드 승인액이 41.8% 늘었다가 -29.9% 급락했다.
향후 한국 경제의 경로는 미지수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초 수정 경제전망을 내놓으며 새 기준을 적용해 종전 3.8%였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4.0%로 올려잡았다. 수출과 내수의 성장 기여도는 1.9%, 2.0%로, 내수 기여도가 보다 높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하지만 민간소비의 흐름은 비관적이다. 전기와 비교한 1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0.3%로, 지난해 4분기 증가율(0.6%)의 절반까지 줄었다. 세월호 충격에 소비심리가 급랭한 2분기를 고려하면, 상반기 민간소비 둔화세가 성장률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1분기 성장률 증가세가 상당부분 새 국제기준에 따라 편입된 항목에 기대고 있다는 점은 이런 우려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쯤에서 다시 곱씹어볼 대목은 '경제는 심리'라는 낡은 명제다. 정부의 초기대응은 사고 해역에서만 늦었던 게 아니라는 얘기다. "모든 사고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 이 당연한 한 마디를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이후 한 달 이상이 흐른 19일에야 담화로 발표했다.
상식을 말하는 데까지 정부는 너무 긴 시간을 썼다. 세월호 충격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를 자인한 것도 불과 열흘 전 긴급민생대책회의 자리에서였다. 정부의 대책은 볼품없었다. 하반기 예산을 당겨쓰고, 피해 예상 업종에 돈을 지원하겠다는 게 정부안의 시작과 끝이다.
우리 경제의 결말은 하반기에 갈린다. 머잖아 휴가철이니 국민들이 곧 세월호를 잊고 지갑을 열 것이라는 기대가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번진다.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생각도 같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세월호 참사로 한국의 민간소비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겠지만, 3분기 초부터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장기 저금리 기조로 가처분소득 대비 이자상환 비율이 하락하고 있는데다 향후 한은의 금리 인상이 이뤄져도 소득 증가분이 이자 증가분을 웃돌 것"이라는 근거를 댔다. 가계자산의 70%가 부동산인 점을 고려하면, 부동산 시장의 회복세도 소비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는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의 올해 경상수지 흑자 폭이 전망치를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사는 "세월호 참사로 수입이 줄고, 새 통계기준이 적용돼 당초 620억달러로 예상했던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5%에 이르는 700억달러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점쳤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때와 다를 것"이라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이름 밝히길 거부한 한 경제학자는 "마음을 찢어놓고 반창고로 되겠느냐"면서 "더디지만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리던 경제에 찬물을 끼얹은 건 다름아닌 정부"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연구기관 관계자는 "사회 시스템의 전면 재건, 쇄신 개각을 통해 정말 달라지겠다는 희망을 보여줘야 경제의 복원력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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