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에 '공공기관' 명시, 정의·범위 등 애매해 형평성 지적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여야 원내대표가 관피아 방지를 위해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 법안(일명 김영란법)' 처리를 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첫 논의 과정을 보면 국회 통과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법안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야 하는 제정법인데다 여야가 첫 심사부터 갖가지 문제점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속기록에 따르면 김용태, 김기식 등 법안소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지난달 임시국회에서 '김영란법'을 처음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여야 의원들은 법안에 명시된 '공공기관'의 정의와 범위 등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 금품 수수를 금지하고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만큼 법의 적용을 받는 공공기관과 공직자 범위를 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제출한 정부안과 김영주, 김기식, 이상민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국회 등 헌법기관, 중앙행정기관, 공직유관단체, 공공기관, 사립학교를 제외한 국ㆍ공립학교 등을 공공기관으로 명시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 등 개별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범위를 감안한 것이다.
언뜻 보기엔 큰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한발짝 안으로 들어가면 의외의 복병이 숨어 있다. 법 적용의 형평성 문제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방송공사(KBS)와 교육방송공사(EBS)는 법 적용 대상이 되는 반면 문화방송(MBS)과 서울방송(SBS)은 아니다. 또 국ㆍ공립학교는 포함되지만 사립학교는 제외되는 식이다. 동종업계에서 법적용 대상이 갈리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공공기관에 대한 근거를 각종 개별법에서 끌어오다보니 그 사이에 틈바구니가 생겼기 때문이다. KBS와 EBS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는 공직유관단체에 포함되지만 MBC와 SBS는 규율범위에 들어있지 않다. 사립학교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과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공공기관 범위에 포함하고 있지만 제정안과는 성격에 맞지 않아 제외됐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달 임시국회 법안소위에서 이와 관련해 "KBS와 EBS만 법에 포함한 문제의식은 뭐냐"고 박재영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에게 따져물었다.
법안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도 "공립학교에 근무하는 행정직원은 법 적용을 받지만 사립학교 이사장이나 교장 등은 청탁이나 사익추구를 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것 아니냐"면서 "정부는 '근거를 어디에서 끌고 왔다'는 형식적이고 기술적인 답변말고 원칙을 얘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무위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정무위는 법안 검토보고서에서 방송사 적용과 관련해 "지배구조의 차이로 인해 법 적용 여부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고 명시했다. 사립학교 포함 여부와 관련해서도 "찬반 입장이 대립되고 있어 사립학교 추가여부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무위는 여야가 김영란법 처리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만큼 6월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정무위 관계자는 "법안에 허점이 많은 게 처음부터 지적됐지만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단기간에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관 부처인 권익위는 법 적용에서 빠진 대상을 포함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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