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21일은 어느 곳보다 안전해야 하고, 안전할 것이라 믿었던 성수대교의 허리가 끊어지며 가슴 아픈 인명피해가 발생한 날이다. 채 악몽이 잊혀지지도 않은 이듬해엔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 이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로 또 소중한 생명들을 억울하게 잃었다. 기본 원칙과 안전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를 불러올 수 있는지 이런 사고들을 통해 뼈저리게 겪어왔다.
하지만 애써 덮어두고 잊으려고 했던 망령이 되살아나듯 올해 들어 대형 사고들이 잇따르고 있다. 경주의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에 이어 세종시 아파트 부실시공, 목포 신안아파트 주차장 붕괴, 그리고 너무나 많은 희생자를 낸 세월호 여객선 사고까지 이어져 왔다. 가슴 아픈 안전사고들이 말해주듯 우리는 지금껏 사상누각과 같은 안전의식 속에서 살아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후진국형 안전사고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지난날의 과오를 돌아봐야 한다. 또 사회에 팽배해 있는 안전에 관한 불감증을 걷어내야 한다.
그렇다고 과거부터 사고가 발생한 후 안전사고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건설에 대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시특법)'이 1995년에 제정됐다. 또 이를 집행할 기관으로 한국시설안전공단이 설립됐다. 법에 따라 다중이용 시설물은 상시적인 감시를 받고 있다.
시특법 대상 시설물 95% 이상이 안전 AㆍB 등급으로 양호하게 관리되고 있으며 이런 시설물에서는 현재까지 대형시설물 사고와 인명피해는 발생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공단이 전담하는 점검 대상 시설물이 시특법 적용 시설물의 1% 미만에 불과하다. 공단 이외의 민간 안전진단전문기관에서 점검ㆍ진단하는 시설물도 국가 전체 시설물 700만여개 중 1% 미만에 그친다. 대형 시설물만 관리 대상일 뿐인 셈이다.
규모가 작은 시설물의 경우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건축법' '농어촌정비법' 등 개별 법령에 의해 각 감독기관과 관리주체별로 관리되고 있다. 아울러 법령의 규정에서 벗어난 소규모 시설물은 그야말로 안전 사각지대여서 전국 도처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국토교통부와 공단은 이러한 소규모 취약시설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소규모 취약시설 무상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로 7년째다. 재난법이나 개별법 등에서 관리되지 않는 사회복지시설, 전통시장, 도로 교량, 옹벽 및 절토사면 등이 대상이다.
무상 점검은 초기 노인 복지시설, 아동 복지시설, 장애인 복지시설 등으로 국한했으나 2010년 사회복지시설 전체로 확대하고 올해 7월부터는 '시특법'시행령을 개정해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전통시장과 소규모 토목시설 등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관리대상이 약 6만5000개 이상을 넘어서게 됐다. 그럼에도 취약시설이 너무 많다보니 국민 전체의 안전의식 제고가 필요하다.
'빨리빨리' 문화 속에 시급히 성과를 내야 하는 풍조 속에서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심정으로 업무를 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인명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설물을 짓고 사용하고 철거하는 순간까지 내 가족이 머무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안전의식을 갖춰야 한다.
이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나태한 사고를 버려야 할 때다. '나 하나는 괜찮겠지'라거나,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는데 별 문제 없겠지'라는 안일한 태도들이 모여 비극적인 사고을 만든 것이다. 안전에서 타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한 책임감ㆍ사명감을 갖고 세밀한 부분까지 매뉴얼대로 지키면서 눈을 감고도 행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만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다.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안전 지킴이가 돼야 할 때다.
장기창 한국시설안전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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