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낱말의 습격]춘사를 당했다?(20)

시계아이콘02분 07초 소요

[낱말의 습격]춘사를 당했다?(20) 낱말의습격
AD


어떤 책을 읽다보니 '춘사를 당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 뜻을 짐작할 수 없다. 椿事. 사전을 찾아보니 '뜻밖에 생기는 나쁜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게 왜 춘사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椿은 참죽나무를 말한다. 참죽나무는 우리가 가죽나무라고 불러온 그 나무이다. 순이 향기롭고 맛있어 경북 상주에선 특화농산물로 내놓는 바로 그것이다. 나무에 봄(春)이 들어가 있으니, 이 봄날의 대표나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왜 그게 나쁜 일을 뜻하는 말에 들어가 있는가. 아리송하다.

중국에서는 춘(椿)이라는 나무가 장수(長壽)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모양이다. 우리가 남의 아버지를 우아하게 호칭할 때 '춘부장'이라고 배운 그 말은 바로 참죽나무 집에 사시는 어르신(椿府丈)이라는 뜻으로 오래 사시라고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중국의 언어관습까지 흉내내던 옛시절의 얘기이니, 이런 말을 굳이 살려쓸 필요는 없으리라. 오래 사는 것을 상징하는 이 나무가 어찌하여 불운한 일을 표현하는데 쓰였을까. 의문은 자꾸 커진다.


일본에서는 춘(椿)은 동백나무이다. 그들은 '얄궂은 일, 괴상한 일'이라고 표현할 때 춘사진사(椿事珍事)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왜 춘사라고 쓰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누군가 그 의미를 아는 이가 있으면 이 답답함을 풀어주기 바란다.

이렇게 헤매다 보니, 문득 1848년 프랑스 알렉상드르 뒤마가 발표한 '춘희(椿姬)'가 떠오른다. 춘희는 풀면 '동백아가씨'란 뜻이다. 여주인공 마르그리뜨 고띠에는 한달의 25일간은 흰 동백꽃을 달고 다니고 5일간은 빨간 동백꽃을 달고 다니며 극장이나 사교계를 누비는 귀부인인데 실은 창녀이다. 아르망 뒤발이라는 청년이 이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고띠에는 영혼의 대혁신이 일어난다. 하지만 사랑은 도전과 시련을 만나고, 고띠에는 죽음을 택한다. 춘희스토리를 원소스 멀티유즈로 활용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1853년에 발표되었는데 그 의미는 '길을 잘못 든 여인'이란 뜻이다. 1928년 우리나라에서도 춘희의 내용을 흉내내어 평양키네마사에서 영화를 만들어 조선극장에서 개봉했다.


뒤마가 소설을 쓴지 20년 만에 조선 땅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의 글로벌한 감각이 그때도 만만찮았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춘희'는 1963년(64년이라고도 한다) 이미자의 애절한 목소리를 타면서 일약 대한민국 으뜸의 대중 아이콘이 된다. 최근의 조사에서도 대한민국 대중가요 토털 1,2위를 다투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판이다. 춘희는 '동백아가씨'(한산도가 노랫말을 지었다)라는 한글 이름으로 풀려나왔고 100만장이 넘는 음반이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했다. 그런데 5.16 쿠데타 이후 한일기본조약 반대 저항에 부딪쳐 있던 박정희 정부는, 스스로의 '항일 기백'을 보여주겠다는 심산이었던 듯, 동백아가씨가 '일본 물이 들었다(倭色)'면서 1965년 방송 금지 처분을 내리고 68년에는 음반도 팔지 못하게 한다. 혹자는 가사 말미의 '빨갛게 멍이 들었소'라는 부분이 북괴의 적화 야욕을 닮았다는 혐의가 추가되었다고 하나 확인된 내용은 아니다.


이 노래가 뜬 이후 64년에 '동백아가씨'라는 영화가 등장했다. 엄앵란. 신성일이 주연한 이 영화는, 저 순정의 춘희에 대한 최루성 헌정본이었다. 대학생을 사랑한 섬처녀는 '동백빠아'에서 일하는 여급이 되고, 사랑은 어쩌구저쩌구를 겪으면서 온 국민의 가슴을 빨갛게 멍들게 했다. 2009년 장사익은, 심장을 오랫 동안 벌렁거리게 했던 이미자 버전의 동백아가씨를 일순간에 잊어버릴 만큼, 멍든 가슴이 다 터져나는 목청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요즘 이 노래를 귀에 꽂고 다니면서 출퇴근 때 듣고 있는데, 안그래도 짧게 휙휙 지나가는 봄날을 조석으로 아리게 한다.


'춘사를 당했다'는 것이, 춘희가 봉변을 당했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저 말은 너무나 똑 떨어지는 표현이 된다. 뒤마의 춘희는 동백꽃 색깔을 바꾸며 폼을 잡다가 인생의 색깔을 바꿨고 결국 삶에서 죽음으로 원천색을 갈아타고 말지 않았던가. 그것의 변주인 라트라비아타는 지금까지도 단골로 대한민국 무대에 올려져 오래된 춘사를 리플레이하고 있는 판이다. 이미자의 봉변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인 흑막에 걸려들어 어이없이 노래조차 부를 수 없게된 온 국민이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입도 뻥긋 못하도록, 동백아가씨 춘사를 당했으니, 이 말이야 말로 우리 근대사의 어이없는 질곡을 함의하는 기막힌 표현이기도 하리라. 굳이 동백꽃 뚝뚝 떨어지는 선운사에서, 막 떠나가려는 여인을 향해 무릎 꿇은 송창식의 눈물이 아니더라도, 동백은 아직 피지 않았는데 선운사 부근 술집여자의 쉰 목소리에 남아있는 지난해 동백꽃잎 지는 소리를 앞당겨 듣던 미당의 귀가 아니더라도, 이 말은 슬프고 답답하고 억울하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6.01.2009:48
    저렴해서 미국인도 푹 빠졌다…"오늘은 라면에 김치" 외신도 감탄한 K푸드⑤
    저렴해서 미국인도 푹 빠졌다…"오늘은 라면에 김치" 외신도 감탄한 K푸드⑤

    "전 세계에서 K푸드에 대한 수요가 식을 줄 모른다." 미국의 경제 뉴스 채널 CNBC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한국 식품의 글로벌 확산세에 대해 이같이 조명했다. 이 방송은 특히 라면을 K푸드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품목으로 지목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K팝과 한국 드라마에서 라면이 자주 노출되면서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까지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물가 인상과 생활비 상승도 비교

  • 26.01.2007:16
    "힙하다 힙해" 퇴근길 치맥에 한국 화장품 싹쓸이까지…일상에 스며든 'K'④
    "힙하다 힙해" 퇴근길 치맥에 한국 화장품 싹쓸이까지…일상에 스며든 'K'④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후 7시 미국 뉴욕 맨해튼 32번가 K타운. 한국 치킨 브랜드 BBQ 매장은 '치맥'을 즐기려는 현지인들로 북적였다. 지하 1층에 마련된 테이블은 일찌감치 만석이었고 20~30대 직장인과 대학생들은 치킨을 앞에 두고 맥주잔을 부딪치며 저녁 시간을 즐겼다. 치킨뿐 아니라 떡볶이와 김치볶음밥 등 다양한 한국 메뉴를 함께 주문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매장을 자주 찾는다는 대학생 메디슨 씨는 "학교 근처

  • 26.01.1915:08
    "돼지갈비에 나물" 파리지앵의 저녁 식탁 오른다
    "돼지갈비에 나물" 파리지앵의 저녁 식탁 오른다

    K웨이브 글로벌 현장 점검 "형 집에 놀러 가는데 저녁 메뉴인 돼지갈비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연말 프랑스 파리 오페라 지역(Rue Sainte-Anne)에 위치한 유명 한인 슈퍼마켓 'K마트'에서 만난 맥심 카본(27살)씨는 '100% 태양초'라고 적힌 고춧가루와 송이버섯과 무, 고추장, 튀김가루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카본은 한국 신림동에서 1년 거주하면서 처음 접한 한식을 잊지 못해 귀국 후에도 파리 한식

  • 26.01.1914:08
    ③"대중문화는 화려한 분수…'일상문화' 흘러야 30년 간다"[인터뷰]
    ③"대중문화는 화려한 분수…'일상문화' 흘러야 30년 간다"[인터뷰]

    "대중문화는 '화려한 분수'처럼 금방 꺼질 수 있습니다. 지하수처럼 '일상 문화'가 계속 흐르도록 해야 K 브랜드와 산업의 생명력을 30년 이상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일열 전 파리문화원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K브랜드의 글로벌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콘텐츠는 강력한 진입로가 될 수 있지만, 휘발성이 크다"며 "어느 순간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썸

  • 26.01.1914:08
    돼지갈비 요리하는 파리지앵…자기 전엔 韓스킨케어 톡톡[K웨이브3.0]②
    돼지갈비 요리하는 파리지앵…자기 전엔 韓스킨케어 톡톡[K웨이브3.0]②

    "형 집에 놀러 가는데 저녁 메뉴인 돼지갈비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연말 프랑스 파리 오페라 지역(Rue Sainte-Anne)에 위치한 유명 한인 슈퍼마켓 'K마트'에서 만난 맥심 카본(27살)씨는 '100% 태양초'라고 적힌 고춧가루와 송이버섯과 무, 고추장, 튀김가루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카본은 한국 신림동에서 1년 거주하면서 처음 접한 한식을 잊지 못해 귀국 후에도 파리 한식당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현지 한식당 대부분이 중

  • 26.01.1609:11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월 15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전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희석 : 감사합니다. 소종섭 :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제명 처분을 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나요? 윤희석 :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죠

  • 26.01.1416:21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1월 14일) ※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함께 여러 가지 이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지내셨죠? 이준석 : 예, 그렇습니다. 소종

  • 26.01.1008:01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808:49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710:25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1월 5일) 소종섭 : 어서 오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장성철 :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종섭 : 이 얘기부터 해보죠.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서 폭언했다, 보좌진에게 갑질했다, 남편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등 의혹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