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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쌍벽을 이룬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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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쌍벽을 이룬다?(17) 낱말의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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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벽(雙璧)을 이룬다 할 때의 쌍벽은 두 개의 벽이 아니고 두 개의 구슬이다. 두 사람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의 발군일 때 우린 그런 표현을 쓴다.

<한비자>에는 화씨라는 성을 지닌 옥(玉)의 감정사가 있었다. 그는 초산에서 옥을 발견하여 여왕(?王)에게 바쳤는데 다른 감정사에게 자문해보니 가짜라고 한다. 그래서 왕은 그의 왼쪽 발꿈치를 자르는 월형에 가한다. 그다음 왕인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또 그 옥돌을 바친다. 다시 보통 돌이라는 의견이 있어 화씨는 오른쪽 발꿈치가 잘린다.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초산 아래에서 그 옥돌을 끌어안고 사흘 밤낮을 울었다. 문왕이 그를 불러 “발 잘리는 형벌을 받은 사람이 그대 뿐이 아닐텐데, 어찌 그리 슬피 우는가”고 까닭을 물었다. “보옥을 돌이라 하고, 진짜를 거짓이라 하여 벌을 준 것이 슬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문왕이 그 옥돌을 다듬게 하니 아름다운 구슬이 나왔다. 왕은 그것을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 불렀다.


이후 진나라 소양왕은 15개의 성과 저 구슬을 바꾸자고, 조나라 혜문왕에게 제의하였고 나라가 전쟁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한비자가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돌 속에 숨어있는 구슬인 인재를 알아보는 일이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은유한 것이지만, 옛 사람들이 구슬을 얼마나 좋아했고 그것에 대해 탐닉했는지를 엿보게 한다.


하나의 완전한 구슬을 갖기 위한 집착을 표현한 말이 바로 '완벽(完璧)'이다. 그러니까 완벽주의자는 구슬광인 셈이다. 쌍벽은 두개의 구슬인데,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뛰어난 두 인재를 말한다. 왜 구슬로 비유했으며 하필 두 개인지에 대해선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두 개의 구슬을 쥐고 기운동 삼아 돌려본 사람이면 구슬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가 쌍으로 있어야 완전해지는 것임을 얼핏 깨닫는다. 그리고 두 개의 구슬이 맞물려 돌아가는 형상인 태극은, 우주의 중심원리가 이 두 개의 구슬에 있음을 살피게 한다.


광주에서 올라오다가, 백양사에 들러 저 두 개의 구슬을 샀다. 그곳 스님들이 인근 호텔 스위트룸을 빌려 도박을 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절의 면모가 하염없이 구겨졌지만, 자연은 그런 것 따윈 아랑곳 않고 이팝나무 꽃들을 피우고 떨어뜨려 오월이 끝나가는 날의 장엄한 녹원을 선물하고 있었다. 손에 다 들어가기 벅찰만큼 크고 묵직한 두 개의 옥벽은 비록 화씨가 두 발 잘리면서 내놓은 구슬에 비하기는 어렵지만, 세상에 어깨를 겨룰 만한 아름다운 경쟁자를 만나 저토록 함께 아름다워지는 풍경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을 돋워본다. 두 개의 완벽이 다시 하나의 큰 완벽이 되는, 쌍벽의 꿈.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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