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역사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기원이란 말이 몹시 놀랍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인가가 새로 시작하는 처음을 가리키는 말은, 기원(起源)과 기원(紀元)이 있다. 앞의 기원은 현재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실, 혹은 현상이나 문화나 관습 따위가 처음 생겨날 때의 양상을 살피는 말이다. 내가 의미심장하게 느끼는 것은 뒤의 기원이다. 우리가 흔히 신기원을 이뤘다고 할 때 쓰는 바로 이 말.
기원은 시간의 첫 눈금을 긋는 일이다. 물론 내가 지금 임의로 시간의 첫 눈금을 그었다고 그것이 기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눈금을 긋는 자는, 강력하고 지속적인 권력을 지닌 자이며, 시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닌 자일 것이다. 그가 그어놓음으로 시작된 시간 개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동의하고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기원이라 할 수 없다. 최고의 시간 권력이 바로 '기원'을 만들어낸 자일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문명을 비교하거나 시대를 파악하고 음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누군가가 기원을 통일해놓았기 때문이다. 기원이 다른 문명을 놓고, 서로 비교하려면 같은 기원으로 환산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동양과 서양의 기원은, 양쪽을 연구한 학자들이 힘을 기울여 동일한 서양식 기원인 BC와 AD로 환산할 수 있기에, 세계사라는 전체적인 구도 안에서 서로 다른 줄기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다.
기원을 만들지 않았다면, 혹은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기원을 고집하여 서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면, 우리는 가까운 과거마저 제대로 음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간에 눈금이 그어지지 않았다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가 시간 속에 개념적으로 들어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과거의 시간은 모호해지고 수많은 착오와 혼란 속에서 역사의 양상들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무인도에 떨어져서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살았다면 그는 언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다. 시간에 따라 일어난 사건들을 배열할 수도 없고 사건들의 연관성을 만들어내거나 선후를 대조하여 의미를 찾는 일도 할 수 없다. 이 모호한 과거들이 구분없이 소용돌이치는 상태, 이런 것이 인류에게도 상당히 오랫 동안 그리고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원 속에 들어있지 않은, 그래서 시간의 눈금으로 표현할 수 없는, 중요한 역사들이 인류사의 멀지 않은 저쪽에 무수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기입되지 않았을 뿐인 그 역사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했던 어떤 신념과 가치와 믿음과 교훈 따위도 거기 함께 묻혀져 있을 것이다.
기원 바깥에 놓인 시간들은 굳이 2014년의 역사와 그 이전의 1000년을 제외한 바깥의 시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기원으로 파악된 역사 속에서도, 저마다 유실된 '무시간'의 역사가 골짝골짝마다 숨어있다. 연도도 사라지고 기록도 사라지고 유물도 사라지고 기억도 사라졌다. 거기서 문득 미투리 여인의 편지와도 같은 너무나 생생해서 충격을 주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 발굴될 때, 인간은 이 일을 풀이하는데에 참 무기력해진다. 스토리텔링은 이런 답답한 절연과 공백 속에 끼어들어, 그 맥락을 풀어내고 그 시간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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