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아직 얼떨떨해요. 코치 수업이 남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영원한 오빠’ 이상민(42)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2012년 5월부터 코치로 일해 온 서울 삼성에서 지휘봉을 잡는다. 지난 12일 3년 계약을 맺었다. 연봉은 비공개다. 처음 제안을 받고 이 감독은 깜짝 놀랐다. 언질을 받지 못한데다 숙소로 돌아가서야 이성훈(54) 단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간단히 미팅 좀 하자.”
“무슨 일이 있나요.”
“감독 선임 건으로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이 감독은 감독을 하기에 스스로가 젊다고 생각한다. 코치로서 갈 길도 멀다고 한다. 조금 더 경험을 쌓고 역량을 키우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삼성은 변화가 절실했다. 2000년대 들어 9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농구 명가(名家)는 2008-2009시즌 4위(30승 24패) 이후 그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세 시즌(2009-2010, 2010-2011, 2012-2013)을 6위로 마감했다. 2011-2012시즌에는 13승(41패)에 그쳐 창단 첫 꼴찌를 했다. 지난 시즌은 19승 35패로 8위를 했다.
삼성은 이 감독을 명가 재건의 적임자로 봤다. 이 단장은 “선이 굵은 리더십과 농구에 대한 감각, 이해 등이 뛰어나 구단이 추구하는 도전과 변화를 이끌기에 적합하다”고 했다. 이 감독은 “그저 열심히 했을 뿐인데 좋게 봐준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선수단의 기가 많이 눌려 있다.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이 감독도 다르지 않다. 그는 “얼마 전까지 막내 코치였다. 선수단과 감독 사이를 조율하는 중간자였는데 갑자기 꼭대기로 올라가서 부담이 크다”고 했다. 계약 직후 이 감독은 2년간 보필한 김동광(61) 전 삼성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다. 김 전 감독은 “큰 짐을 짊어졌지만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며 “나이에 신경을 쓰지 마라. 나도 네 나이 때 (감독을) 시작했다”고 했다. 김 전 감독은 34살이던 1987년 중소기업은행에서 처음 지휘봉을 잡았다. 프로구단은 41살이던 1994년 안양 SBS에서 처음 맡았다. 그는 “이 감독이 걱정이 많은 것 같은데 기우다. 코트에서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았나.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삼성 역시 경험을 주목했다. 이 단장은 “다양한 경험으로 정상의 가치와 의미를 잘 안다”고 했다. 홍대부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이 감독은 KCC, 삼성 등에서 코트를 누비다 2010년 은퇴했다. 발자취는 화려하다. 1992년 농구대잔치에서 신인왕을 수상했고,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네 차례 연속 베스트5에 선정됐다. 프로에서도 승승장구했다. 1997-1998시즌과 1998-1999시즌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는 등 13시즌 동안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활약했다. 세 차례(1997-1998시즌·1998-1999시즌·2003-2004시즌) 팀 우승을 견인했는데 2003-2004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다. 통산 성적은 581경기 평균 10득점 6.2도움 3.4리바운드다.
이 감독은 한국 농구 최고의 인기 스타이기도 하다. 농구대잔치 시절 팬들을 몰고 다닌 ‘오빠 부대’의 원조로 프로에서 9시즌 연속 올스타 투표 1위를 했다. 은퇴 뒤에는 2년간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고, 2012년부터 삼성에서 코치로 일했다.
이 감독은 “정상을 많이 밟았다는 점에서 구단의 기대치가 큰 것 같다”며 “나 역시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로 그는 지난 챔피언결정전을 꼽았다. 이 감독은 “울산 모비스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창원 LG에 뒤졌지만 경기를 노련하게 운영해 우승할 수 있었다”며 “양동근(33)과 함지훈(30)이 경험에서 김시래(25)와 김종규(23)를 앞섰다”고 했다. 이어 “우리 선수들에게도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사안을 주문하겠다”고 했다.
김 전 감독은 후배 감독에게 눈높이 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현역시절을 누구보다 화려하게 보내지 않았나. 선수들의 움직임에 성이 차지 않을 수 있다”며 “주문대로 따라오지 못했을 때 ‘나는 하는데 너희들은 왜 못하냐’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끊임없는 소통으로 눈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언은 하나 더 있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것이다. 김 전 감독은 “스타 출신 지도자라서 조급할 수 있다. 프로는 냉정한 곳이지만 서두르면 도태할 수밖에 없다”며 “좋은 성적은 노력도 있어야겠지만 운도 따라주고 좋은 선수도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이든 차분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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