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도 워싱턴DC의 봄은 벚꽃으로 활짝 피어난다.
워싱턴DC의 인공호수 타이들 베이슨 둘레에는 벚나무가 약 3750그루 심어져 있다. 이스트 포토맥 공원과 워싱턴 기념탑 주위에서도 벚나무가 자란다.
워싱턴DC에서는 벚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현지에 거주하는 분께 들으니, 그곳 벚꽃은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지난 겨울 강추위 여파 때문에 예년보다 늦게,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 초 절정에 이른다고 예보됐다고 한다.
워싱턴DC의 벚나무는 미국과 일본의 우호관계를 상징한다. 역사는 19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 도쿄 시장이 워싱턴DC에 벚나무 3000그루를 보내줬다. 그해 3월27일 퍼스트 레이디 헬렌 태프트는 일본 벚나무를 타이들 베이슨 북쪽 기슭에 심는다.
헬렌 태프트는 1907년 남편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가 벚꽃의 화사함에 매료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헬렌의 남편 윌리엄 태프트는 당시 미국 육군장관이었다. 태프트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에 이어 1909년에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러자 일본은 미국에 벚나무를 보내는 등 선린외교에 공을 들인 것이다.
시계를 1905년으로 돌리자. 태프트 장관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7월 가쓰라 다로(桂太郞) 일본 총리를 만나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맺는다. 이를 통해 미국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인정한다. 대신 일본은 미국이 통치하는 필리핀을 넘보지 않기로 한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어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중재에 나선다. 러ㆍ일 양국은 미국 동북부 항구도시 포츠머스에서 약 한 달간 강화 협상을 벌인다. 1905년 9월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일본은 조선의 지배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동해가 일본해로 쓰인 것도 이 때부터였다.
우리는 국제정세에 어떻게 대응했나. 대응은커녕 분위기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하와이 교민들은 포츠머스 협상에서 독립 문제가 미국의 우호적인 개입으로 잘 풀릴 수 있다고 봤다. 이승만이 대표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독립을 청원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일본과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맺은 뒤였다. (박보균, 살아 숨쉬는 미국 역사)
벚꽃은 우리를 아름다움에 취하게 한다. 동시에 아프게 한다.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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