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정부가 돋보이는 게 아니라 국민이 돋보이는 규제가 돼야 한다"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을 지낸 심영섭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일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로도 잘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에 '규제개혁의 원칙과 방향'이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개혁이 고품질의 규제가 돼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심 선임연구위원은 "규제개혁은 역대 정부가 강조해 왔지만, 결국은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을 정도로 어려운 과제"라면서 "규제자로서 규제개혁에 소극적인 관료와 현존하는 규제로부터 수혜를 보는 당사자들의 저항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규제개혁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함께 정교한 기획이 뒷받침되어야만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규제개혁의 세 가지 원칙과 명품규제를 위한 십계명을 제시했다.
세 가지 원칙 중 하나는 "규제의 품질이 곧 정부의 품질"이라며 "대통령책임제 하에서는 임기 중 생산된 규제의 품질이 곧 정권의 품질"이라는 것 제2원칙은 "개별규제를 중심으로 규제개혁에 나서면 이해당사자들의 저항에 부딪히기 때문에 모든 규제를 대상으로 일괄정리(overhaul)해 나가야 한다"이며 제 3원칙은 "규제개혁이 이벤트가 아닌 상시 진행되는 정부혁신으로
연결돼기 위해서는 규제설정 및 운용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강구돼야 한다"이다.
심 연구위원은 "규제는 한번 설정되면 개혁하기가 어려워서 신설할 때부터 명품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십계명에 충실하면 피규제자들이 지적하는 '나쁜 규제론', '불량규제론'의 논란에서 벗어나면서 규제의 효과를 제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1계명 : 정부규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 법치주의 원칙에 충실하라=규제를 생산하는 정부가 이러한 이념과 원칙에 기반을 두고 철저한 훈련(discipline)이 필요하다. 불량규제의 대부분은 '원칙 따로 실천 따로'에서 비롯되며, 이는 곧 시장 경제적 법치주의의 실현에 장애로 작용한다. 최근 중국을 비롯해 체제전환국에서 정부의 역할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을 보고 우리 정부당국도 인·허가 과정에서 이를 따라 하고 싶은 유혹에 끌린다면 이 또한 경계해야 마땅하다
◆제2계명 : 법률만능주의와 행정편의주의의 매너리즘에서 과감하게 탈출해야 한다.= 아직도 개발연대 시절의 생각이나 관념으로 만들어지는 법령이 수두룩하다. 민간이 할 일과 정부가 할 일을 구분하고,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에 정부가 나서지 않아야 한다.
◆제3계명 : 사회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을 이끄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인 '부의 미래(2006)'에서, 기업은 시속100마일의 속도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며 사회 다른 부문의 변혁을 주도하는 반면에 정부와 관료조직, 정책과 법 제도는 30마일도 안 되는 속도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앨빈 토플러의 지적은, 물론 정부의 정책이나 법 제도의 운용이 기업 활동만을 고려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가장 역동적인 기업의 역할을 인정하고 기업의 활력을 뒷받침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제4계명 : 공익(公益)의 필요성을 빌미로 과다 규제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과도한 규제에 대해 피규제자의 입장에서 부담해야 하는 막대한 규제 준수비용은 보지 못한 채, 규제를 신설하거나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만을 강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관부처가 정책적 편의만 고려한 채, 규제에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제5계명 : 규제에 대한 주기적인 정밀점검(overhaul)이 필요하다.=20세기 산업화 시대의 낡은 규제인지 21세기 정보화·융합화 시대에 걸맞은 규제인지를 주기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사이버, 모바일, 스마트 시대의 전개에 따른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규제 체계를 모색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제6계명 : 법령에 명시적인 위임이나 근거 없이는 규제를 만들 수 없다.=때로는 하위 법령의 규정 가운데 모법의 규정이 아닌 타법을 원용하거나 에둘러 적용하고자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를경계해야 한다.
◆제7계명 : 미래 산업과 미래 사회에 걸맞은 규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현존하는 제도와 규제는 단일기술, 단일산업을 전제로 마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융합기술의 발달로 융합 제품 및 서비스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나, 법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여 장애로 작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새롭게 떠오르고 빠르게 발전하는 융합 영역일수록 새로운 법체계와 틀의 마련이 시급하다.
◆제8계명 : 규제 기법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한시적 규제유예, 재검토형 또는 효력상실형 규제일몰제, 규제예시제 등 규제에 따른 부작용 우려를 불식시키고 규제개혁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실천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규제개혁 수단이 다양하게 제시될수록 정부 당국이 그만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9계명 : 피규제자 및 이해당사자와의 진지한 대화가 없이는 명품규제가 만들어질 수 없다.=규제를 설정하기 전에 입법예고나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는데, 이때 형식적인 통과의례가 아닌 실질적인 의견수렴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제10계명 : 국민보다 정부가 부지런한 규제가 명품이다.=이는 곧 정부가 규제를 통한 공권력 행사를 쉽게 동원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시장의 힘을 신뢰하고 시장경제의 창달에 도움이 되도록 행정력을 우선적으로 발휘할 의지가 있는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후자의 경우에 해당되면 명품 규제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과태료 부과 등 직접적인 공권력 행사를 앞세우는가,아니면 규제하는 정책의 목적 및 과정을 담은 정보를 취합해 시장과 국민에게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가와 같은 문제이다.
세종=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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