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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 "정글같은 아이들의 세계, 그 뒤의 상처…지금 해야 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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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우울증 등 무거운 주제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영화 '우아한 거짓말'

김희애 "정글같은 아이들의 세계, 그 뒤의 상처…지금 해야 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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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환하게 웃고 있지만 여기에 물방울 하나 떨어뜨리면 영락없이 우는 얼굴이다.' 이 웃는 듯 우는 얼굴을 가진 딸 '천지'가 14살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날 아침 식탁에서 평소답지 않게 엠피쓰리를 사달라고 조르던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엄마였다. "계란후라이가 예쁘게 부쳐졌네"라며 환하게 웃던 딸이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오래 전에 사고로 남편을 잃고, 이제 딸마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냈지만 엄마는 남아있는 큰 딸을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나 쌀을 씻고 밥을 안친다.

배우 김희애(47)가 연기한 엄마 '현숙'은 씩씩하고 당당하다. 그 사고를 당한 후에도 마트 시식코너에서 두부를 팔면서 애써 밝게 생활한다. 다만 학교 가기 싫어서 마트에 찾아온 한 학생에게 돈을 쥐어주면서 "무슨 일인지 엄마한테는 꼭 얘기하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의 슬픔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을 뿐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김희애는 "감독님이 원한 '현숙'은 큰 슬픔을 이겨낸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었다"며 "감정의 최밑바닥 부분을 지나 그걸 딛고 일어서는 모녀에 초점을 맞췄는데, 어려운 얘기를 따뜻하고 재밌게 풀어내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딸의 죽음으로 출발한 영화 '우아한 거짓말'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우울증과 자살 등 무거운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있다. 사춘기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미묘하고도 예민한, 그러면서도 잔인한 감정의 선들이 이 비극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한 가족의 상실감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영화의 톤은 비극을 비극으로만 그치게 하지 않는다.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김희애가 21년 만에 선택한 영화가 이 작품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아이들 세계도 정글과 같아요. 힘 센 아이, 운동 잘하는 아이, 외모가 좋은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 등 그 안에서도 서열이 있죠. 실제 영화에서보다 뉴스를 보면 더 한 경우도 많고요. 물론 사회에 나가도 똑같긴 하지만요. 영화 대사 중에도 아이들이 따돌릴 때 '칭찬은 베이스로 깔고, 모함을 포인트로 준다'는 말이 있잖아요. 영화는 어떤 것도 소재가 될 수 있지만, 이 문제만큼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다뤄져야 할 얘기가 아닌가 싶어요."


김희애 "정글같은 아이들의 세계, 그 뒤의 상처…지금 해야 할 이야기" 영화 '우아한 거짓말' 중에서


영화는 전작 '완득이'를 통해 다문화가정과 교육문제를 유쾌하게 그려내 큰 반향을 일으켰던 김려령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외롭지 않아', '행복해', '괜찮아' 누구나 하는 이 우아한 거짓말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추리해나가는 데 영화는 초점을 맞춘다. 왜 '천지'는 '까똑, 까똑, 까똑...'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스마트폰 메시지에서 소외됐을까, 끊임없이 천지를 괴롭히는 걸로 위안을 삼은 '화연'에게는 어떤 상처가 있을까. 어느 한 명을 악역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점에서도 영화는 설득력을 얻는다. 아역들의 섬세한 연기도 빛이 난다.


"처음 이 시나리오를 봤을 때 흠잡을 때가 없었습니다. 배우가 자꾸 이것저것 피하는 것도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하겠다고 했죠. 도전을 하면 할수록 인생이 풍요로워지는데, 저는 겁이 나서 계속 아는 길만 가고 있었던 거죠. 현장에서 아역 배우들이 의젓하게 있다가도 자기 역할을 할 때에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어요. 시사회 때 처음 완성본을 봤는데, 어린 애들이 저렇게 신통하게 해낸 것을 보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나만 잘하면 되는 거였는데, 괜히 부끄럽고. 평소에 눈물이 많은 편도 아니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영화가 너무 슬프다보니까 점점 눈물이 예측할 수도 없게 많이 나왔어요."


함께 한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한동안 이어졌다. 둘째 딸로 출연한 '천지'역을 맡은 김향기에 대해서는 "어른인 나도 부끄러울 정도로 놀라운 감수성과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배우"라고, '화연' 역을 맡은 김유정에 대해서는 "너무 예뻐서 악역을 안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역할을 더 하고 싶어하는 것을 보고 똑똑해보였다. 이 영화는 김유정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큰 딸 '만지' 역의 고아성에 대해서는 "독특하고 개성이 강하다"며 "이미 '설국열차'라는 대 작품을 통해 성인 배우로서 성공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1983년 16세 나이로 데뷔해 올해로 벌써 30년이 넘게 활동하고 있는 김희애는 최근 각종 예능프로와 영화 등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박수도 받아보고, 외면도 받아봤고, 아무도 안 찾아줄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최근에 많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조심스럽습니다. 항상 이번 출연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지구력 하나는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맡은 것은 열심히 하려고 하고, 관리도 잘 하려고 합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주어진 일에 도전해서 후배들한테도 길을 터주는 선배가 되어야죠."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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