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노동, 전통 그리고 현대'.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가 작품을 구입해 화제가 된 도예가 이헌정 작가가 이달 전시를 앞두고 던진 키워드다. 찌그러진 달항아리, 옻칠을 올린 작은 콘크리트 모형집 등 작품에는 그가 강조한 단어들이 엿보인다.
이헌정 작가는 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업에서 손이 하는 노동, 도자기를 굽고 옻칠을 올리는 전통과 함께 현대적인 해석을 통한 충돌을 나타내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의 달항아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갖는 정형성을 비틀어 보이고, 콘크리트 같은 산업적인 재료에 전통의 미를 입히는 작업은 과거와 현재를 충돌시키면서도 연결 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작가는 "아마 내 작품을 본 전통공예 장인들과는 크게 부딪힐 수 있겠지만 그런 '충돌'을 유도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전통이 갖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역설했다. "예술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시각적인 결과물 자체만이 아닌 작가의 삶과 작업과정을 엿볼 수 있어서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한 옻칠 작업을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던 무형문화재 손대현 장인의 아들과 함께 진행했다. 작가는 "손대현 장인과 협업을 여러차례 하면서 대충하는 법이 절대 없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초심으로 돌아가 내 도자기 작업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계기도 됐다"고 말했다. "손바닥 만한 규모라도 옻칠을 마무리 하려면 하루 종일 십 여 차례 칠을 올려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전통 기법을 따르는 노고가 베어 나왔다. 이처럼 많은 양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작업과정에서 그는 "명상과 참선을 경험한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이미 외국 유명 인사들이 소장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미국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 하이테크 건축의 거장인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 인도의 국민 작가 수보다 굽타 등도 작품을 사들인바 있다.
이 작가는 세라믹(도자기)을 활용한 탁자, 벤치와 같은 가구, 그릇, 설치미술, 오브제와 함께 콘크리트와 같은 매체를 혼합적으로 사용해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눈으로 감상만 하는 '오브제'와 '실제로 쓰이는 생활 도자'의 경계가 모호한 것들이 많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만 원짜리 그릇이 10억짜리 그림보다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 이분법은 예술의 본질에서 멀게 한다. 아름다움을 친근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잃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홍익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조각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도자벽화인 청계천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제작과 양평 강하미술관의 설치작업을 진행했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의분청사기 특별전'에서 한국 도예가 최초로 전시를 한 바 있다.
오는 13~28일까지. 서울 청담동 네이처 포엠빌딩. 박여숙화랑. 02-549-7575.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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