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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읽다]치매와 '오래된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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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읽다]치매와 '오래된 농담' ▲치매노인에게 그림 치료를 통해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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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치매는 '기억을 잃어버리는' 치명적 병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머릿속에 기억시킨다. 그것이 뭉쳐 삶이 된다. 그런데 기억을 잃어버렸으니 자신이 어린아이인지, 어른인지, 누구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셈이다.

영화 '노트북' '내 머릿속의 지우개' 등 국내외의 영화 속에서도 치매의 아픔을 그린 작품들이 참 많다. 치매는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가족에게까지 비극이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측면에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한 가정을 파괴하는 곳에까지 이른다. 그럼에도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의 최근 자료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2008년 8.4%, 2010년 8.8%, 2012년 9.1%로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012년의 경우 남성은 15만6000명, 여성은 38만5000명 등 총 54만1000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추세라면 치매 인구는 2030년에는 127만, 2050년에는 271만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치매에 대한 과학적 연구도 줄을 잇고 있다. 여러 가지 연구 성과는 많이 나오고 있는데 치료제 개발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주 혈관성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 단백질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규명돼 관심을 모았다. 국내 연구진이 혈관성 치매를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인 단백질을 찾아낸 것이다. 이 단백질이 뇌에서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해마에 존재하는 신경세포를 죽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NADPH산화효소1(NOX1, 활성산소를 만드는 세포막에 존재하는 효소 가운데 하나)이 만들어내는 활성산소가 지방과 DNA의 산화를 통해 해마의 신경세포를 죽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NOX1 활성을 억제하는 방식의 혈관성 치매의 예방과 치료연구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혈류가 통하지 않는 양측 경동맥 폐색(양쪽 경동맥을 실로 묶어 혈류가 통하지 않도록 하는 처리)을 한 랫트(실험쥐) 모델에서 NOX1이 많이 만들어졌다. 과산화물을 만드는 NOX1이 해마의 신경세포를 죽여 학습과 기억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이종민, 최동희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최 교수는 "혈관성 치매에서 해마 신경세포 사멸에 관여하는 NOX1에 의한 발병의 원인을 규명했는데 이를 토대로 NOX1 억제제 개발과 유전자 치료에 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혈관성 치매는 기억력 등의 인지기능과 행동조절에 관여하는 대뇌 주요부분에 뇌혈관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병이다. 해마(Hippocampus)는 대뇌의 양쪽 측두엽에 존재하는 부위로 기억 등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를 말한다.


그러나 치료제가 나오기 까지 시간은 필요해 보인다. 최 교수는 "치료제가 개발된 뒤에도 전임상과 임상연구 등의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천양희 시인의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는 시집에 '오래된 농담'이라는 시가 있다. 아주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노부부가 서로 업어주면서 시작되는 농담을 시로 담았다. 신혼의 기억과 젊었을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노부부의 농담은 그래서 옅은 웃음을 머금게 한다.


(중략)
늙은 아내가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 달라 조른다
신혼의 첫 밤을 기억해낸
늙은 남편이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 그늘보다 몇 평이나 뚱뚱해져선
나, 생각보다 무겁지? 한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
그러니 무거울 수밖에


(중략)
늙은 남편이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 달라 조른다
자식농사 풍성하던 그날을 기억해낸
늙은 아내가 마지못해 업는다
나, 생각보다 가볍지? 한다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허파엔 바람 들어갔지 양심은 없지
그러니 가벼울 수밖에(천양희의 '오래된 농담' 중에서)


노부부의 '오래된 농담'이 읽는 이들에게 웃음을 던지기도 하고 긴 세월동안 살아온 노부부의 찰진 대화에 부러운 느낌마저 든다. 이런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 업어주는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동경의 대상이다.


수명은 길어지고 치매 환자는 늘어나는 현실 앞에 우리는 서 있다. 아직 마땅한 치료제도 없다. 그 사이에 한 가정이, 우리 사회가 위협받고 있다. 국가 사회적 치매 관리 시스템이 완벽하게 이뤄져 있지 않는 현실에서 오래 사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건강하고 맑고 무엇보다 지나온 시간을 되새겨 보면서 또렷한 기억 속에서 농담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이 중요하다. 국가와 사회가 치매관리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치매는 한 가족의 문제이기 이전에 우리 사회 전체가 안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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