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정상 쪽으로 몇 걸음 더 올라가자 갑자기 시야가 뻥 뚫리며 멀리 바다가 확 펼쳐진다. 시선을 좀 당기니 몇 몇 섬이 눈에 잡힌다. 가까운 바다에는 배들이 듬성듬성 떠있고, 항구는 보이지 않는다. 울창한 빌딩의 숲이 해안선을 가린 탓이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이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온통 빌딩이다. 수 십 층짜리 오피스 빌딩에서 50층이 넘는 아파트까지 온갖 종류의 초고층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그러니까 산 정상의 바로 밑은 울창한 나무의 숲이고, 이어 빌딩의 숲, 다음은 바다 순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문득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다에서 시작해서 빌딩 사이를 돌고 돌아 나무의 숲을 거쳐 정상까지 올라온 것이리라. 바닷바람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고, 도시의 바람, 또는 산바람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중국대륙의 남쪽이라지만 2월의 새벽,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금세 몸에 냉기가 엄습한다. 이럴 때는 따뜻한 커피가 제 격. 발길을 돌려 전망대 상가에 있는 스타벅스로 갔다. 가장 작은 아메리카노 한 잔이 4200원, 서울보다 비싸다는 생각에 주춤했지만 차가운 몸이 먼저 계산대 쪽으로 움직인다. 그로부터 다섯 시간 뒤, 우리 일행은 해변에 와 있다. 그 사이 산에서 내려와 도심 빌딩숲을 한 바퀴 빙 둘러봤고, 점심을 먹었다. 바다가 보이는 광장의 벤치에 앉으니 다시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이번에는 추위 탓만은 아니다. 느끼한 점심의 후유증과 바닷가 풍광이 커피를 부르는 것이다. 빙 둘러보니 멀지않은 곳에 스타벅스 매장이 보인다. 그런데 아까와 커피 값이 다르다.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잘못 봤나.' 호주머니에서 영수증을 꺼내 여러 번 비교했지만 해변의 스타벅스가 '전망대'에 비해 10% 가까이 싸다. 커피를 사들고 돌아와 그 연유를 물어보니 그 곳에서 3년을 살았다는 이의 답변이 흥미롭다. "호호호, 서울과 셈법이 달라요. 산 정상은 월세가 더 비쌀 테고, 그러니 원가가 더 높지 않겠어요. 이 도시의 스타벅스 커피 값은 매장에 따라 조금씩 달라요. 그게 합리적인 거 아닌가요." 그러고 보니 그 말이 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맥도날드 햄버거도 그렇고, 스타벅스 커피도 그렇고, 닭튀김도 그렇고, 같은 브랜드의 제품가격은 전국 어딜 가든 똑같아야 마땅하다는 우리의 상식이 비합리적인 게 아닐까,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비로소 드는 것이다.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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