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올림픽이 아니라 '서울' 올림픽이고, '중국' 올림픽이 아니라 '베이징' 올림픽이며, '러시아' 올림픽이 아니라 '소치' 올림픽인 것은 올림픽이 원래 국가가 아닌 도시가 주최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또 그 출발에서는 국가 대항전이 아닌 개인들의 경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TV 화면에 비쳐진 소치 올림픽 경기장에서 다른 무엇보다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은 넘실대는 국기의 물결, 그리고 애국주의의 함성이었다. 메달을 딴 선수들이 대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국의 대형 국기를 온몸에 휘감고 역시 국기를 흔들며 열광하는 자국 응원단의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을 도는 것이었다. 그 순간 올림픽은 스스로를 매섭게 단련한 이들의 '더 빨리, 더 멀리'의 경쟁이 아닌 '애국심의 경연장'이 돼 있었다.
국경이 없어진다는 이 세계화의 시대에 국가주의는 오히려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는 것을 가장 비정치적이라는 스포츠 행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얼핏 아이러니로 비쳐진다. 그러나 실은 아이러니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올림픽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비정치 행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번에 소치 올림픽 개회 선언을 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과거에 올림픽 출전 선수들에게 "경기장에서 국가를 부르지 않고 딴짓을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고 하는데 그의 말은 이 공공연한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었다. 독일의 천재적 여성 감독으로 불리는 레니 리펜슈탈은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올림피아'를 통해 최고의 나치 선전물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영상과 극적인 카메라 기법으로 지금까지도 다큐멘터리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영화는 독일 선수들의 활약상을 통해 독일 국민들의 마음을 게르만 민족주의로 일체화시켰다.
바로 이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올림픽에 그토록 많은 투자를 하는 한 가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올림픽이야말로 사실은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고효율 투자'이기 때문이다. 한때 올림픽 성적이 부진했던 일본이 2000년대 들어 다시 상위권으로 올라서고 있는 것 역시 군국주의 물결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정부의 스포츠 투자의 결과다.
늦은 밤 졸린 눈을 비비며 우리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할 때, 그 뒤에 있는 국기들을 지우고 보고 싶다. 한 인간의 투혼과 분전, 그 '순결한' 땀냄새만을 맡고 싶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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