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겨울올림픽이 종반을 향해 치닫는다.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이 지고 새로운 영웅이 떠오른다. 빅토르 안(안현수)처럼 부활한 히어로도 있다. 그 뒷편에 이름 없는 선수들이 있다. 노메달이면 어떤가. 1초의 승부를 위해 긴 시간을 불사른 열정에 감동하고 극한의 긴장을 이겨낸 그들에게 숙연해진다.
"순위는 뭐" 하다가도 신문의 메달 집계표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인 듯하다. 중반을 넘긴 한국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친다. 대표선수단의 공식 목표는 금메달 4개였지만 내심 6개 정도는 바라는 눈치였다.
불운을 탓하고 부진에 낙담해야 할 선수들이 오히려 국민을 위로한다. 올림픽은 메달 이상의 것이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올림픽은 핑계였다. 올림픽을 통로로 스케이트를 계속했다. 메달이 없어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행복했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 이규혁이 마지막 레이스를 끝내고 남긴 말이다. 20년간 6회의 올림픽에 도전했으나 메달은 그를 외면했다. 그런 그가 노메달을 탓하기보다 '핑계'라는 쿨한 한 마디로 아름다운 작별을 고했다.
"저희는 괜찮다는데, 왜 여러분이 형을 욕 하나요?" 쇼트트랙 계주에서 넘어진 이호석에게 네티즌의 비난이 쏟아지자 후배 신다운이 쓴 편지다. 두 번 넘어지고도 완주해 동메달을 목에 건 박승희는 "난 괜찮다.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쳤다. 기대주 모태범은 메달을 놓친 후 "나는 죽지 않는다"며 4년 후를 기약했다. 동료들은 "4등도 대단하다"고 어깨를 두드렸다. 줄 세우기와 결과주의가 판치는 한국 사회에서 극한의 경쟁을 벌이는 국가대표 청소년들의 의연하고 쿨한 모습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한국 빙상은 기적의 행군을 이어왔다. '부자나라 축제'라는 겨울올림픽에서 한국이 이름을 알린 것은 쇼트트랙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 이후다. 안현수가 3관왕에 오른 2006년 토리노는 한국 쇼트트랙의 정점이었다. 2010년 밴쿠버는 한국 빙상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 모태범ㆍ이상화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신천지를 열었고 김연아는 은반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한국이 쇼트트랙 강국으로 떠오르자 그럴듯한 분석이 따랐다. '체구가 유리하다'는 일종의 천부론이다. 얼마 전 한 전문가의 깜짝 놀랄 말을 들었다. '체구론'은 놀라운 성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지어낸 말이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곡선 중심의 쇼트트랙에서 작은 체구의 민첩성은 유효하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체력, 치고 나가는 파워가 훨씬 더 중요하다. 세계 정상에 섰던 김동성, 성시백의 키는 175cm, 178cm다. 쇼트트랙의 희망 심석희는 174cm이고, 스피드스케이팅의 여제 이상화는 165cm다.
한국 쇼트트랙 신화는 체구보다는 피나는 연습과 뛰어난 전술의 결과다. 매일 10시간을 연습했다. 얼음판을 짚는 개구리장갑, 날 들이밀기, 휘어진 스케이트 날, 외다리 주법 등은 모두 한국 발명품이다.
하지만 비법은 더 이상 한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두가 비법을 알고 쓴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코치도 여럿이다. 세상이 다 그렇다. 애플은 스마트폰의 새 시대를 열었지만, 이제 스마트폰은 애플의 전유물이 아니다.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면 추락할 뿐이다.
쇼트트랙의 비리가 새삼 도마 위에 올랐다. 올림픽 성적도 예전만 못하다. 그러나 실망은 이르다. 쇼트트랙의 성취가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로 이어졌듯 빙상 한국은 계속 진화할 것이 분명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실수한 동료를 격려하며, 메달 이상의 가치를 지향하는 신세대 선수들이 있기에 그렇다.
박명훈 주필 pm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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