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판매업체 부품 독점
정보 비공개, 부르는 게 값
유통마진·공임비도 불투명
# 중형차 쏘나타를 타고 다니는 직장인 이모씨는 최근 서울 을지로에서 차선을 변경하다 접촉사고를 냈다. 상대 차량은 아우디였다. 문짝과 펜더가 살짝 긁혔지만 차량 수리비용은 무려 240만원이 나왔다. 반면 아우디와 비슷하게 파손된 쏘나타의 수리비는 아우디의 5분의 1 수준인 50만원에 그쳤다. 아우디 수리 기간은 일주일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렌트비가 추가되면서 비용 170만원이 추가됐다. 이씨가 가입한 보험사는 수리비와 렌트비를 합친 410만원을 상대방에게 물어줬다. 이씨는 이 사고로 당장 내년부터 보험료가 할증된다. 그는 '외제차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란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자동차 보험금이 과다한 수리비로 줄줄 새고 있다. 특히 외제차는 자동차보험 손해율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외제차는 '보험금 먹는 하마'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손보사들이 외제차에 지급한 보험금은 총 4737억원으로, 전년의 4086억원 보다 16% 늘었다. 같은 기간 국산차 지급보험금 증가율(0.4%)과 비교하면 40배나 높은 수준이다. 손보사가 지급하는 평균 보험금도 국산차가 100만원 정도인 반면, 외제차는 296만원으로 3배가량 많다.
외제차가 보험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데는 터무니없이 비싼 수리비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외제차 부품의 평균 수리비는 233만원으로 국산차 54만원에 비해 4.3배나 높았다.
손보업계에서는 외제차 수입·판매 업체가 차량 부품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수입차 업체는 부품을 들여온 뒤 가격을 매기는데, 그게 바로 국내 부품값의 기준이 된다. 한마디로 '부르는 게 값'이 되는 구조라는 얘기다.
송윤아 보험연구원 박사는 "국산차와 외제차를 포함한 전체 수리비 가운데 부품비 비중은 44%지만 외제차의 경우 60%가 넘는다"면서 "시장가격이 대부분 공개돼 있는 국산차와 달리 외제차는 가격정보가 폐쇄적"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불투명한 유통 마진과 공임비도 외제차 수리비를 부추기는 요소로 꼽힌다.
수리비뿐 아니라 렌트비도 만만찮다. 자동차 사고로 인해 수리를 받으면 해당 기간 동안 외제차 업체들은 대개 고객 편의를 위해 렌트차량을 제공한다. 외제차 렌트 비용은 평균 120만원으로 국산차(33만원)보다 4배나 비싸다. 하지만 수리기간이 길어지면 수리비보다 렌트비용이 더 많아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수입차 보험금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외제차 구매가 늘어날 경우 자연스럽게 자동차보험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외제차에 과다 지급되고 있는 보험금을 국산차 운전자들이 분담하는 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당국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내년부터 외제차 등 손해율이 높은 차량에 대해서는 자차보험료를 차종별로 최고 11%가량 올리기로 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손해율에 맞춰 무턱대고 보험료 인상카드만 뽑을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보험업계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독점체제인 외제차 부품의 유통구조를 경쟁 체제로 전환하고 공임 등 수리비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이유태 경북도립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보험료 인상 카드는 외제차 수리비 문제에 있어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면서 "부품공급의 독점 구조와 불투명한 수리비 내역 공개 등을 병행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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