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송사장은 강조하듯이 힘을 주어 말했다.
“하지만, 이 골짜기엔 변화래야 눈을 딱고 보아도 없어요. 그게 문젭니다. 낡은 집들은 다 허물어져가고 있지, 젊은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다 갔습니까? 기껏 소 키운다고 젖소 농장 들여오니까 어떻습니까? 파리 들끓죠? 소 값 떨어진데다 그 뭔가 광우병인가가 돌아서 망했죠? 그러니 희망이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어요. 변화하지 않는 자는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핸드폰이다 인터넷이다 정신없이 핑핑 변해가는 세상에서 나는 그대로 있겠소, 하는 자는 나는 망해도 좋소, 하는 자랑 똑 같애요. 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조악스런 말투였지만 입 하나는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옳소!” 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래서, 저 송종팔이가 결심을 했어요. 비록 가진 것은 별로 없고 자본도 짧지만, 고향 살구골 저수지 옆으루다 용인에 있는 거 그 뭣이더냐 에버랜드가 뭔가 하는 것 같은 멋들어진 대형 위락시설을 개발해야 하겠다 하고 말이죠. 그게 바로 <차차차 파라다이스>의 탄생 배경이 올씨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또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잘 한다, 송사장! 한번 잘 해봐. 밀어붙여!” 하는 소리도 들렸다. 응원 소리에 송사장은 기세가 더 붙었는지 유세라도 나온 것처럼 더욱 큰소리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럼 <차차차 파라다이스>가 들어서면 어떻게 되느냐? 마,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선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와 살기가 더없이 편리해질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부근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될 거라는 점은 분명하게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다아 부자 돼요. 다아~! 요즘 어딜 가나 농사꾼들 농사 지어 부자 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밭머리에 에쿠스, 그랜저 세워놓고 노니작 노니작 장난삼아 해도 땅값 하나면 수십억씩 굴리는 게 현실이에요. 뭣 할라고 애써서 농사 지어요? 그까짓 거 몇 푼 된다고....여러분, 안 그렇습니까?” 노골적이라도 너무 노골적이었다. 듣고 있자니 하림은 입맛이 썼다. 그래도 말이라도 그럴듯 했으면 싶었는데 역시나, 였다.
소연이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저 인간 정말 더럽게 재수 없게 생겼죠?” 그러더니 가만히 하림의 옆에 대고 귀엣말로,
“지난 번 우리 가게에 와선 뭐 내와라 뭐 내와라, 온갖 거들먹을 다 떨더니, 갑자기 엉덩이께에 손이 쓱 올라오는 게 아니겠어요. 깜짝 놀랐어요.” 하고 말했다.
“그래...?” 하림은 왠지 송충이라도 건드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눈썹 사이에 굵은 주름살이 그려졌다.
“근데 소연아, 너 저 사람 뒤에 서있는 남자가 누군지 알아?” 하림이 눈짓으로 송사장 뒤에 열중쉬어 자세로 서있는 키 큰 사내를 가리켰다.
“저 사람.... 이장님 친군데.... 왜요?” 소연은 하림의 눈길을 따라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 사람이 마을의 개를 쏘아 죽였던 사람이야.”
“예...?”
“내가 봤어. 그 날....” 소연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림을 올려다보았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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