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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빈섬의스토리]그날 김재규는 심수봉에게도 총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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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과 어느 가수의 인생(2)


[이빈섬의스토리]그날 김재규는 심수봉에게도 총을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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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8일자 26면서 계속>


이때 맞은 편 자리에 조용히 김재규가 들어와 앉았다. 신○○은 노래를 부르면서 그가 들어와 앉는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신○○과 박 대통령은 어느새 합창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당신이 내곁을 떠나간 뒤에에에에 얼마나아아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오오. 박 대통령은 1974년 8월(광복절날) 피격으로 죽은 육영수여사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실눈으로 애상에 잠겨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노래는 후렴 구절로 넘어갔다. 예이예이예이 예예예예예 예이예이예이…이때 김재규가 오른손으로 옆에 앉은 김계원 비서실장의 허벅지를 툭 쳤다. 그리곤 오른쪽 바지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뽑더니 "건방진…"하면서 갑자기 차지철을 쐈다.

당시 당국의 조사 발표에선 김재규가 "각하를 똑바로 모십시오." "버러지같은 자식들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라는 말을 했다고 했으나, 심수봉은 그런 소리를 들은 적 없다고 부인한다. 그런 말을 할 새가 없었던 것이다. 김재규의 첫발은 차지철의 오른 손목에 맞았다. 차지철은 "김부장 왜 이래?"하는 고함을 지르며 실내 화장실로 뛰어갔다. 손목에선 피가 줄줄 흘렀다. 이때 김계원은 일어서서 "각하 앞에서 무슨 짓이야?"라고 소리치며 김재규를 밀었다.
이때 노래를 흥얼거리던 대통령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뭣들 하는 거야?" 방금 노래를 그친 신○○은 순간 대통령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감고 똑바로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재규는 차지철을 따라갈 듯이 엉거주춤 일어서서는 박대통령을 내려다보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박 대통령의 오른쪽 가슴 위쪽으로 들어가 박혔다. 김재규는 이 순간의 결행을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고 표현했다.


심수봉의 말에 따르면 총을 맞은 뒤 박 대통령은 한참 동안 자세를 그대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 심수봉이 기타를 치우려 몸을 약간 움직였다. 박 대통령은 이윽고 고개를 떨구고 몸이 기울어졌는데 이마가 식탁에 닿았다. 그녀는 자신 쪽으로 쓰러진 박 대통령을 부축해 앉히면서 울음과 함께 비명을 질렀다. 대통령의 목에서 그르륵 하며 가래끓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에게 기댄 박 대통령의 몸이 종이처럼 가볍게 느껴졌다고 심수봉은 말한다. 이때 신○○이 일어나 심수봉 쪽으로 가서 대통령의 등을 부축하려 한다. 뜨거운 것이 물컹 잡혔다. 놀라서 손을 떼보니 피뭉치였다.


한편 김재규는 대통령에게 한 발을 쏜 뒤 다시 연발로 쏘려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격발이 되지 않았다. 김은 당황한 표정을 하며 신경질적으로 노리쇠를 연거푸 후퇴시켜 보았지만 장전이 되지 않았다. 김재규는 순간 마루로 뛰어나갔다. 이후 화장실로 피했던 차지철이 문을 빼꼼 열어 머리만 내밀고는 말했다. "각하, 괜찮습니까?" "난 괜찮아" 대통령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신○○은 대통령의 피를 막으려 손수건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등 뒤의 상처를 막고 있었는데 손가락 사이로 피가 줄줄 흘렀다. 신○○이 다시 물었다. "각하, 정말 괜찮습니까?" 대통령은 다시 대답했다. "응, 난 괜찮아."


이때 전깃불이 일제히 나갔다. 사방이 깜깜해지는 순간 옆방 대기실과 주방에서 총소리가 이어졌고 고함소리도 들렸다. 이때 경호원들에게 일제사격이 이뤄졌다. 이윽고 불이 켜졌을 때 김재규가 다시 만찬장으로 들어왔다. 그는 우선 화장실에서 나온 차지철에게 총을 쐈고, 다시 박대통령의 머리를 쐈다. 그리고는 대통령을 부축하고 있던 심수봉에게도 총을 겨눴다. 심수봉은 겁에 질렸으나, 총은 격발되지 않았다. 총알이 떨어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신○○은 김재규가 대통령의 머리에 권총을 갖다대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몸을 뺐다. 그리고는 실내화장실로 뛰어갔다. 이때 대통령은 심수봉이 앉았던 방석으로 쓰러졌다. 방석이 이미 붉게 물들고 있었다. 등 뒤로 총성을 들으며 화장실로 간 신○○은 문을 잠그고도 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다. 도망갈 곳이 있나 하고 두리번거렸다. 높게 난 창문엔 쇠창살이 쳐져 있었다. 신○○은 손을 뻗어보았다. 탈출은 불가능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조용히 벽에 기대 앉았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신○○이 이때를 틈 타 밖을 나오니, "업어. 조심하고 잘 모셔"하는 김계원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그림자가 대통령을 업고 나가고 있었고, 김계원은 그 뒤를 따라나가고 있었다. 방문 쪽에는 차지철이 쓰러져 있었다. 신○○이 차지철의 손을 잡고 부축하여 일으키려고 했을 때 그는 힘을 써보다가 포기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난…못 일어날 것 같애." 그는 풀썩 다시 눕더니 깊은 신음을 흘렸다. 신○○은 차지철의 마지막 눈빛이 생생하다고 오랜 뒤에 말했다.


차지철 곁에 함께 있던 청와대 식당관리인은 신○○을 안방과 마루 하나를 사이에 둔 부속실로 가라고 채근했다. 그 안에는 심수봉이 입술이 파래진 채 덜덜 떨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뒤 또 몇발의 총소리를 들었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경비원 대기실에서 "다 죽었어?" "예, 다 확인했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신○○은 심수봉에게 속삭였다. "야, 지네들끼리 짜고 저러는 거 아냐?" 김계원과 김재규가 공모한 거 같다는 얘기였다. 신○○은 경호원대기실에 두고온 핸드백이 갑자기 생각났다. "혹시 저 자들이 간첩이면?" 신○○은 주소를 보고 집으로까지 찾아와 죽이면 어쩌나 싶었다. 그녀는 핸드백을 가져오려고 문을 빼끔 열었다. 갑자기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야! 들어가. 문닫고 가만히 있어!"


그러나 간이 큰 신○○은 잠시 후 다시 문을 열었다. 이번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방에서 화약냄새가 진동을 했다. 경호원대기실 문에 시신 하나가 가로질러 쓰러져 있었다. 경호처장(정인형)이었다. 시신을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가니 다시 시신 하나가 있었다. 부처장(안재송)이었다. 의자 위에 있던 핸드백은 그대로 있었다. 그녀는 심수봉의 핸드백까지 주섬주섬 챙겼다. 신○○은 거기서 컬러텔리비전을 처음 봤다고 말한다. AFKN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신기한 눈으로 그걸 잠깐 보는 사이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검은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기, 청와대 경호실인데요. 그쪽에서 총성이 났는데 무슨 일인지 확인해줄 수 있습니까?" 신○○은 따라와 곁에 선 심수봉에게 속삭였다. "야, 뭐라 그럴까? 무조건 모른다 그러자." 그리고는 "몰라요"하면서 끊었다. 한두 시간쯤 다시 있자 박선호 과장이 들어왔다. 둘을 보더니 그는 나오라고 손짓을 한다. 박선호는 그들을 입구인 경비원 대기실로 데리고 갔다. 둘은 여기서 피묻은 손을 씻었다. 30분 뒤 박선호는 윗옷 안주머니에서 봉투 두 개를 꺼내 이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20만원씩 수표가 들어있었다. 박선호는 심수봉과 신○○에게 오늘 있었던 일은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고 다짐한 뒤 집에 가라고 했다.


박선호는 그들을 내자호텔까지 태워다주게 했다. 심수봉이 거기에 차를 세워뒀던 것이다. 차에 오르자마자 심수봉은 우황청심환을 꺼내 신○○에게 반쪽을 떼어 건넸다. 그리고 언니, 동생 하자고 말했다. 그후 일주일 동안 심수봉은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조사를 받았다. 조사할 때마다 그녀는 "무조건 이일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른다라고 말하라"는 다짐을 받았다고 한다. 신○○과 함께 당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에게 불려간 적도 있었다. 전씨는 이때 둘에게 "고생 많았으니 보약 사먹으라"며 백만원이 든 봉투를 주었다고 한다. 심수봉은 이 돈 중 60만원은 진짜 보약을 사먹었다고 말했다.


[이빈섬의스토리]그날 김재규는 심수봉에게도 총을 겨눴다

한 절대권력자의 피의 종말을 지켜본 충격과 후유증은 심수봉의 가장 아름다운 젊은 날들을 얼룩지게 했다.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지닌 여인으로, 권력자와 야릇한 관계를 가진 여인으로 치부되면서 그녀는 더 이상 아름답고 순수하고 고결한 이미지의 그때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그 사람이란 표현조차 궁정동의 그 끔찍한 기억에 붙들려 박 대통령과 동의어로 취급될 지경에 이르렀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젠 어떨까? 그녀가 그렇듯 순애(純愛)에 목청을 가다듬는 것도 어쩌면 비극에 휘말린 죄로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간절함 같은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자존심, 이런저런 재고 따지는 일 따위가 사랑에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사랑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존재 본질에 관여하는 가장 높은 가치가 아니던가? 계산없이 그저 사랑하는 동물적 치정(痴情)이야 말로 그녀가 꿈꿔온 낙원이었는지 모른다. 그녀의 깊고 오래된 상처를 따뜻이 보듬어줄 넉넉한 손길과 품이야 말로, 사랑과 동의어였는지 모른다.


심수봉은 제5공화국 출범과 더불어 방송 출연을 금지당한다. 1984년 금지령이 해제된 뒤 그 이듬해 부른 노래 <무궁화>가 전두환의 귀에 거슬린다. 전씨가 떼어낼 수 없는 궁정동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전두환은 또 하나 심수봉과 인연이 있다. 1983년 심수봉은 드라마 주제가 하나를 불렀는데 그게 <순자의 가을>이었다. 이순자여사를 풍자하는 귓속말들이 나돌 때였으니 권력자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순자 금지령이 내려졌고 제목은 <올가을에 사랑할 거야>로 둔갑했다.


스물 몇 해 가장 꽃다운 시절을 오려내버린 그 악몽은, 이제 스산한 역사의 행간 속에 먼지와 함께 스며들었다. 심수봉의 절뚝거린 생애를 보듬어줄 손길은 없다. 지어미(1993년 10월 결혼)로서 어머니로서 가위눌린 밤 없는 행복을 구가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랄까. 심수봉이 가장 자기 개성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노래는 1988년에 발표한 <사랑밖엔 난 몰라>일 것이다. 이 노래는 그 두해 전에 내놨던 <미워요>와 같이 격했던 여인 화자(話者)의 내면이 담담해져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노래는 심수봉의 심정을 돋을새김하는 등가물처럼 느껴진다. 그 뒤에도 그녀는 잊혀질 만하면 하나씩 노래를 내놓는다. 삼사년 만에 한 앨범씩을 내놓으며 그녀를 좋아하는 팬들의 심금을 울린다. 1994년 <비나리>부터는 심수봉에게도 묵직한 중년적 서정이 얹혔다. 그뒤 발표한 <사랑하는 사람아>에도 나이테가 간잔지런하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사랑은 여전하지만, 젊음의 결기에만 의존하지 않는 세월의 묵은 냄새가 애상 속에 은은히 풀어헤쳐진다. 뒤엉킨 삶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청정해지며 결고운 저음이 되어 적셔져 오는 노래. 심수봉의 목청 끝에 회한처럼 남는 애상을 다시 맛보며 우린 지난 시대의 기분을 샘플처럼 체감하는 것일까? 상처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상처없이 아름다워질 수 있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심수봉은 우리 시대의 상처에서 피어난 가장 순정하고 슬픈 뉘앙스가 아니던가. <끝>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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