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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0장 뜻밖의 방문자(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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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0장 뜻밖의 방문자(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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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들어가자 여자 노인네 두엇이 둘러앉아 있는 한쪽에 요를 깔고 누워있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하소연이 사촌언니였다. 그녀는 베개를 베고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회색 개량한복 차림의 머리가 희끗희끗한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앉아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소연이가 말했던 시 쓴다는 먼 친척 아저씨라는 짐작이 들었다.

“일단 손가락 끝 열군데 십선혈은 따 주었다만, 아무래도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야할 것 같구나. 엠불란스는 어떻게 됐니?” 하림과 함께 소연이가 들어오자 그는 그녀를 향해 조용하게 말했다. 무척이나 조용하고 침착한 어투였다. 하지만 뭉턱한 코와 툭 튀어나온 눈이 어쩐지 희극적인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이런 급박한 순간에도 그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침착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의 평소 내공이 심상치 않다는 반증이었다. 하림은 한쪽 구석에 가서 조용하게 앉았다. 왠지 조심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곧 도착할 거라고 했는데요.” 소연이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기다리는 틈에 몇 군데 더 놓아볼까. 중풍 끝에 쓰러진 것이라 참 어려워. 아무튼 영골, 대백에, 곡지, 삼리 사주혈에다, 정종, 정근.....” 그는 혼자 젠 채 뭐라 중얼거리며 침을 빼서 팔과 다리, 발에다 깊게 꽂았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쑥봉을 꺼내더니 배꼽 위아래 몇 군데에 놓고, 향을 꺼내 불을 붙인 다음 향불로 쑥봉 끝에다 불을 붙였다. 곧 쑥냄새와 향냄새가 은은하게 방안에 퍼졌다.


“강해. 강하면 쳐. 남도 치지만 먼저 자기부터 쳐. 화룡이란 놈이 설치면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아. 원래 있던 단전 쪽 아래 바다로 보내야 하는데..... 그걸 수승화강이라 하지. 그럴려면 조기치신(調氣治神)이라, 먼저 기를 순하게 조화시키고 신을 다스려야 해요. 암튼 강하면 어디에선가 막히고 터지게 마련이지. 암. 누구라도 마찬가지야.” 시술을 하며 그는 마치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리곤,


“모든 병은 원인이 있어요. 마음의 병은 내인이라 희노우사비공경(喜怒憂思悲恐驚)이요, 바깥으로부터 들어오는 병은 외인이라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니, 이를 일러 칠정(七情)과 육음(六淫)이라 하지. 지나치게 기뻐하고 화내고 걱정하고 생각하고 슬퍼하고 무서워하고 놀라는 것이 칠정이라면 바람과 추위, 더위, 습한 것, 건조한 것, 뜨거운 것은 육음이 돼. 이런 게 당부에 파고들면 병이 되는 거예요.” 하고 계속해서 알듯 모를 듯한 소리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보면 환자에게 하는 소리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거기 앉아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림은 어쩐지 그의 반백의 머리와 회색 개량한복이 그의 말투와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하림이 처음 방에 들어올 때 흘낏 한번 보았을 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쑥봉이 반쯤 타들어갔을 무렵, 소연이 사촌언니가 그제야 조금 안색이 돌아오며 가늘게 눈을 떴다. 그때 바깥 쪽 슈퍼 아래 길에서 요란한 싸이렌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추어 서는 소리가 들렸다. 엠불런스가 도착했다는 소리였다. 마치 시간을 맞추기라도 한 것 같았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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