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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0장 뜻밖의 방문자(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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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0장 뜻밖의 방문자(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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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윤여사가 이것저것 귀찮게 캐어묻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혼자 걸어오면서 생각하니까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그녀가 그동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라도 이것저것 물어보아야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는 하림이 뭐라 대꾸하건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않았고, 별로 호기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녀가 다 알고 있거나 아무것도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질문이 없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직 이층집 영감과 딸에 대한 반감과 적개심 밖에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림은 더 이상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히려 그에겐 동철이 했던 말이 더 가슴에 걸렸다.

‘그렇잖아도 지난 주 혜경씨 미장원에 갔다왔다. 머리도 좀 자를 겸. 너한테 소식이 없다고 조금 섭섭한 눈치더라.’
그리고나서 그는 덧붙였다.
‘시골 들어가더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다고 말이야. 은하도 봤어. 하림이 아저씬 왜 안 오느냐고 묻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가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면 그런 말을 듣는 순간, 미안한 생각보다는 먼저 그리움이 앞서야 할 것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은 언제 들어도 가슴을 출렁이게 하는 그리움이 묻어있게 마련이었다.
예전에는 그랬다. 문혜경이란 이름은 그냥 이름이 아니라 출렁이는 진동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고, 그리움이 있었다.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가을날,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다시 만났을 때만 해도 그랬다. 그녀에겐 지워지지 않는 학창시절의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두고 연적이었던 한 사내, 혜경이의 남편이 되었던 그 사내, 곱슬머리 양태수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고 지난 겨울, 그녀의 미장원에서 마지막 잠을 자고 나왔을 때만해도 그랬다. 그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 역시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결혼을 포기하고 멀리 떠나가겠다고 하는 순간, 그와 그녀는 남이 아닌 남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하림에겐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사랑은 그저 지나가는 꿈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과 여란 게 돌아서면 남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래도 은하는 보고 싶었다. 귀여운 은하....
은하를 생각하자 동화 속 그림처럼 뾰족 뾰족한 빨간색 지붕과 벽에 노란 페인트가 칠해진 어린이집이 떠올랐다. 하림은 어린이집 놀이터 앞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은하가 나올 때까지 그네를 타며 기다리곤 했었다. 그네는 너무 작아 엉덩이가 거의 땅에 닿을 것 같았다. 작은 손가락으로 어린이집 뾰족지붕 위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하늘을 가리키며 은하가 말했다.
‘하늘나라는 어디 있어? 저어기 있어?’
그리고 앞 이빨이 빠진 앙증스런 표정으로,
‘아저씨, 하느님은 몇 살이야?’
하고 물었었다. 그런 은하가 지금은 왠지 혜경이 보다도 더 보고 싶었다.


하림이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중에 어느덧 삼거리에 있는 하소연이네 ‘길목 슈퍼’ 근처에 이르렀다. 그런데 슈퍼 앞 느티나무가 있는 공터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림은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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