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가치하락,물가상승,성장률하락,국채수익률상승에 고유가까지 겹쳐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미국의 시리아 공격 임박설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방침으로 통화가치 급락으로 물가불안에 시달리는 신흥국에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브라질은 기준금리를 9%로 인상해 물가 불안에 대응하는 쪽을 선택해 결국 성장을 희생시켰다.
인도와 터키, 인도네시아 등 경상수지 적자국들은 통화가치 하락에 이어 유가상승으로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지는 상황에 직면했다. 저성장과 고물가 등 디플레이션은 종착역이 될 공산이 크다.
국제 유가는 그동안 북해와 나이지리아의 공급차질로 소리소문없이 상승세를 타고 있었는데 미국의 시리아 공격 임박설은 국제유가 상승속도를 가속시키고 있다.
기준유종인 북해산 브렌트유는 28일(현지시간) 런던 선물거래소에서 10월 인도물이 배럴당 117.34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월25일 이후 최고가였다. 미국 서부텍스사산경질유(WTI) 도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물이 배럴당 110.10달러를 나타냈다. 이는 2011년 5월3일 이후 최고치다.
브렌트유는 단 이틀 사이에 7달러, 6%이상 올랐다.이로써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과 부진한 경기회복 덕분에 수요도 억제돼 국제 유가가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그동안의 관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문제는 유가 향배다.프랑스의 소시에테 제네럴은 27일 보고서에서 시리아에 대한 공습이 단행되면 며칠내로 125달러로 오르고, 주변국으로 확산되면 150달러까지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시에테 제네럴의 이 같은 전망은 결코 ‘괴담’은 아니며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문제다. 시리아에 이웃한 이라크는 하루 3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는 시리아 반정부군은 국경을 넘나들며 폭탄 공격을 감행하고 있어 시리아 분쟁의 여파가 이라크로 전염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이달초 이라크의 주요 원유생산지이자 시아파가 다수인 남부 바스라항 근처 움 카스르 부두에서 트럭이 폭발하기도 했다.
전직 CIA 요원으로 현재 바클레이스 은행 분석가인 헬리마 크로프트는 “이라크의 최대 유전 두 곳인 웨스트 쿠르나나 주바이르에 대한 공격은 원유 시장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보안부대에 경계강화를 지시했다.
다른 변수는 이란이다. 시리아의 우방국인 이란은 시리아에 대한 공습이 단행되면 유조선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국제유가 상승 재료가 된다.
국제유가 상승은 산유국 외에는 아무도 반기지 않는 악재다. 양적완화를 통해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는 일본도 원전폐쇄로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만큼 유가상승은 악재 중의 큰 악재다. 통화가치 하락으로 경제가 요동치는 신흥국 경제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특히 원유수입이 많은 인도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는 원유수입 증가 등으로 3월 말로 끝난 2012 회계연도에 국내총생산(GDP)의 4.8%인 882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냈고 적자 행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올들어 7개월 동안 인도의 원유수입은 월평균 142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9억 달러보다 증가했다.
그래서 루피는 거의 매일 최저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루피는 28일 인도 뭄바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68.8450을 기록,1993년 이후 최저수준을 보였다. 이날 하루에만 3.9% 하락해 올 들어 20.1% 평가절하됐다.
통화가치 하락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무역수지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를 악화시키고 물가상승을 촉진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성장률은 급락하고 있다. 회계연도 1분기(3~6월 말0 성장률은 4.6%로 추정된다. 이는 2009년 1월 1분기 이후 가장 낮다. 연간 성장률 전망도 매우 암울하다. BNP파리바은행은 인도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5.2%에서 3.9%로 낮췄다.이것도 달성할지는 의문이다.
소비자물가는 지난달 8.6% 상승했다. 인도는 ‘위기’에 근접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속출하고 있다.
인도가 선택할 수단은 별로 없다. 금리 인상과 긴축외에는 별도리가 없지만 인도의 정책당국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루피만큼이나 통화가치가 많이 떨어지고 경상수지 적자를 내고 있는 브라질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29일 기준금리를 9%로 0.50%포인트 인상했다. 브라질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달 6.27%로 4.5~6.5%인 관리목표 내에 있지만 6월에는 6.7%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가불안은 헤알화 가치 하락이 주범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헤알화는 달러화에 대해 16%이상 하락했다. 성장과 물가안정이라는 목표달성은 요원하다. 기준금리가 9%이면 대출금리는 이보다 훨씬 높아 가계는 물론, 기업의 투자 심리 위축은 불가피하다.
시리아 공습이 단기 악재로 끝날지는 미지수다. 양적완화 축소만큼 장기간에 걸쳐 신흥국가를 괴롭힐 악재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신흥국의 대응수단은 별로 없다. 통화가치 하락과 물가불안, 성장률 하락, 국채 수익률 상승은 신흥국을 꼼짝 못하게 하고 있다. 인도 3776억 달러,한국 4135억 달러, 브라질 4406억 달러 등 외채가 많아 만기도래금을 갚는 탓에 신흥국들의 외환보유고는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외환보고를 헐어 통화가치 하락을 막는 일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재난은 하나씩 오지 않는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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