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더니 알 수 없는 게 세상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이장인 운학에 대해 그런 속마음을 가지고 있을 줄은 천만 뜻밖이었다. 물론 절름발이에 술주정꾼인 그가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인지도 몰랐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고 김치국도 바가지 째 먹으면 탈이 나게 마련이었다. 그런 그가 그녀의 말대로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이층집 영감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을 하고 있다면 그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긴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무언가 아리송한 구석이 없지도 않았다. 사랑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놈이 돈이라는 물건이다. 돈이야 말로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강력한 힘이다. 일이십대 때야 사랑이 어떻구 저떻구 한대도 이해가 갈 법도 했지만 나이 마흔 줄에 사랑이 어떻구 저떻구 하는 건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 그녀가 그렇게 냉소를 치며 단정 지어 말하는 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고,
“어쨌든 그 일로 송사장이란 자와 한번 크게 말다툼까지 했던 적이 있었죠. 그런데 막무가내였어요. 깡패처럼 무섭기도 하고..... 여자라서 깔보는 것 같기도 하구요.”
하고 말했다. 그래서 자기더러 도와달라는 뜻이었다. 이건 남 똥 누는데 같이 용을 써달라는 것이 아니라 숫제 대신 똥을 눠달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도와주실거죠?”
하림이 아무 대꾸도 않자 뒤따라오던 남경희가 다시 다짐이라도 하듯 말했다. 캄캄함 밤, 바람소리만 윙윙거렸다. 아라비안 칼처럼 등이 굽은 푸른 초승달이 높은 하늘에 날카롭게 걸려있었다. 멀리 저쪽 둑길 끝에 이층집 불빛이 비쳤다.
하림은 차제에 분명한 대답을 해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한 기대를 가지게 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안합니다만 난,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내가 나서서 도와줄 일도 없을 거구요. 아침에 내가 나선 것은 그저 안타까워서 그런 것 뿐이예요. 사실.....”
하림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말했다.
“어젯밤 총소리가 들려 엉겁결에 나와 봤어요. 근데....”
“근데 뭐예요?”
남경희가 고비를 잡아채듯 재우쳐 물었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노인은 아니었어요.”
하림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감추어두고 있던 것을 말해버렸다.
“그럼, 누가 그랬는지 봤다는 말인가요?”
그녀가 황급히 걸음을 빨리 해 하림 곁으로 오며 말했다. 그리곤 하림의 옆얼굴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이 어둠 속에서 호기심 어린 고양이 눈처럼 빛났다.
“그러니까....어두워서 나도 제대로 보진 못했어요. 멀기도 멀었고... 다만 누군가가 죽은 개를 끌고 가는 건 봤는데 형체로 봐서 늙은 노인은 아니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아침에 내가 나서서 댁의 아버진 아니라고 했던 거죠. 그것 뿐이예요.”
하림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어둠 속이라 그녀가 자기의 표정을 눈치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그가 수도 고치러 온 사내였다, 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것만은 모든 게 드러나기까지 감추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약간 실망한 듯이 고개를 돌렸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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