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으면 휴일 아침에는 달린다. 6월 마지막 날은 아침부터 더웠다. 돌아오는 길엔 걸었다. 두 시간 넘게 땀을 흘린 몸이 축 처졌다.
얼른 집에 가서 욕조에 몸을 담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우선은 한강 둔치 수돗가에서 물을 뒤집어쓰자.
그날 수돗가에는 서울시 공무원이 다가왔다. 그는 나보다 먼저 와서 물을 끼얹고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씻으면 안 됩니다. 마시는 물입니다."
공무원 말을 잘 듣는 축이 아니지만 난 그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목만 축이고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한 이유에는 몇 단계 설명이 필요하다.
발단은 몇 년 전 책 '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을 읽은 것이었다.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은 이 책에서 자신은 생수 대신 수돗물을 마신다고 밝혔다. 그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시위' 차원에서 그렇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지지난해 생수시장 기사를 다루면서 서울 수돗물이 마시기 적합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접했다. 서울시는 수돗물 품질 향상에 5000억원을 들였고, 그 결과 서울 수돗물은 미국 음용수 기준을 여럿 통과할 정도로 수질이 좋아졌다.
그런데도 서울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사람은 4%에 불과하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정수된 물은 깨끗해도 공급관로가 낡았다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질은 떨어질지 모른다.
지난 5월에야 알게 됐다. 서울시는 이미 2009년과 2010년에 각 가정의 수돗물을 검사해 마시기 적합하다는 스티커를 250만가구에 붙여 줬다. 적어도 250만가구는 수도꼭지 물을 바로 마셔도 된다는 얘기다. 우리 집 싱크대 벽 타일에도 검사필증이 붙어 있었다.
이제 난 전보다 자주 수돗물을 그냥 마신다. 서울시에서 최고 수준으로 처리해 무료로 제공하는 마실 물을 허드렛물 쓰듯 평펑 쓰면 안 된다고 여기게 됐다. 참, 한강 둔치 수도전에도 검사필증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불신에는 돈이 든다. 주로 씻고 세탁하는 용도로 쓰이는 수돗물을 마시기 적합한 수준으로 정화하기 위해 투자한 돈과 매년 들이는 돈은 상당 부분이 허비된다. 또 수돗물 대신 생수나 정수기 물을 마시는 데에도 추가로 돈이 들어간다.
서울 수돗물은 합당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처지에 있는 게 과연 수돗물뿐일까.
백우진 선임기자 cobal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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