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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반포대교 밑엔 측우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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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선집중 시리즈 50. 잠수교

[아시아경제 김지은 기자]
큰 비만 오면 서울은 이곳부터 바라본다
보통땐 車·사람 길, 폭우땐 물길··· '트랜스포머 다리' 38년
반포대교보다 6년 빠른 1976년 건설
예전엔 한강 유속 낮춰 홍수 대비
'창밖에 잠수교가...' 영화에도 등장

[서울스토리]반포대교 밑엔 측우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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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한강공원에서 강북 방향으로 한강을 바라보면 특이한 다리를 볼 수 있다. 바로 다리 아래의 다리, 그 이름도 특이한 '잠수교'다. 반포대교 아래에 놓여 서빙고와 반포를 잇는 다리다. 비가 간간이 내리던 17일 저녁에 찾은 잠수교는 한강에 잠기지 않아 차량과 시민들의 왕래가 허용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다리 위의 차도와 인도는 한강 수면과 맞닿을 것처럼 조금은 위태롭게 보였다.

잠수교는 말 그대로 비가 많이 내리면 '잠수(潛水)'하도록 다른 한강 다리들보다 훨씬 낮게 설계되어 있다. 한강 수위가 6.5m를 넘어서면 잠수교는 잠기게 되기 때문에 한강 수위가 5.5m를 넘어서면 보행자 통행이 차단되고, 6.2m를 넘어서면 차량도 통제된다. 그래서 '잠수교가 잠겨 통제되었다'라는 뉴스가 나오면 시민들은 서울에 큰 비가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잠수교가 서울의 '호우 경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잠수교에는 서울의 강남 개발의 역사가 배어 있으며 과거 빈발했던 홍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또 다소는 '초현실적인' 이 다리를 소재로 한 노래와 영화도 등장했다. 서울 사람들의 삶의 역사의 독특한 산물이자 증표인 것이다.

[서울스토리]반포대교 밑엔 측우기가 있다


반포대교 아래에 있는 잠수교지만 이 다리가 지어진 것은 오히려 반포대교보다 먼저다. 1976년에 잠수교가 건설되고 그 6년 뒤에 반포대교가 놓인 것이다. 1970년대 서울의 '촌 동네'였던 강남이 성장하면서 강남과 강북 간에는 잇따라 다리가 놓였다. 여기에는 강북에 지나치게 인구와 각종 인프라가 몰려 있어 전쟁 발발 시의 피해를 우려한 박정희 정부의 '강남 진흥 정책'도 크게 작용했다. 반포대교 덕분에 가려져 항공 사진이나 위성 사진을 찍어도 나타나지 않는 잠수교는 그래서 당시 정부에게는 '안보교'로 통했다.

잠수교가 잠수교로 지어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반포대교 아래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따로 공간을 확보하지 않아도 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홍수를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높이를 낮게 함으로써 한강의 유속을 낮춰 홍수를 대비하는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지금은 제방시설이 발달해 비가 많이 내리는 경우 한강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해 잠수교가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비가 많이 올 때 수면 아래로 잠긴 잠수교가 한강의 유속을 감소시킨다. 그래서 잠수교에는 물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떠내려오는 물건이 걸리지 않도록 난간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한국전쟁 때의 기억도 한몫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때 폭격으로 인해 붕괴된 한강인도교와 한강철교로 인해 한강을 건너 강남으로 피난을 가려던 많은 이들이 다리를 건너다 죽기도 하고 아예 건너지 못해 많은 피해를 봤다. 그 때의 경험 때문에 잠수교는 다리를 받치는 교각을 15m의 짧은 간격으로 두어 쉽게 무너지지 않게 지어졌고, 폭파되더라도 금방 복구되기 쉽게 했다.

[서울스토리]반포대교 밑엔 측우기가 있다


잠수교는 낮은 높이 말고도 다른 다리와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바로 다리의 중간 지점이 아치형으로 올라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강을 오가는 유람선이나 보트 등의 선박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잠수교 초기에는 다리를 여는 '승개장치'가 설치되어 크레인으로 교각 20~21번 사이 15m 구간을 들어올릴 수 있는 가동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모습이 신기해 종종 구경하며 놀라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구조 변경 공사로 승개시설이 없어진 뒤 아치형으로 바뀌어 지금의 잠수교에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


잠수교는 대중문화에도 흔적을 남겼다. 1985년 개봉된 영화 '창 밖에 잠수교가 보인다'는 제목 그대로 영화 속에 잠수교가 등장한다. 송영수 감독이 연출을 맡고 정승호, 김진아가 주인공을 맡은 이 이 영화에서 성공한 남자의 정부로 살아가는 여성 윤희와 전과자이자 떠돌이 가수 미스터A는 서로 사랑하게 되는데, 윤희는 남자를 죽이고 미스터A와 만나 잠수교를 함께 걸으며 재회를 약속한다.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주제가가 잠수교만큼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보여/ 창밖에 사랑이 보인다 보여'


느린 곡조로 반복되는 몽환적 느낌의 가사는 잠수교를 다시 한번 사람들의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리게 했다.


잠수교 일대 반포한강시민공원은 이제 강남에 사는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 돼 있다. 이곳에서는 반포대교의 달빛무지개분수가연출하는 야경을 볼 수 있다. 전임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 해외 블로그에서는 이 분수를 "9380개의 분사구에서 물이 날개처럼 뿜어져 나와 반포대교 위를 걸으면 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며 전세계 '엽기적 분수 10선'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경탄인 듯 비아냥인 듯 무지개분수의 화려한 야경 아래 잠수교는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하는 강물 속에 몸을 담근 채 그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어둠 탓인가. 강물이 출렁이고, 잠수교도 출렁이는 듯했다.




김지은 기자 muse86i@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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