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공능력 뛰어나지만 설계·엔지니어링 약해
원천기술투자 더 늘려야 건설수익성 악화 개선
[아시아경제 박미주 기자]해외건설 수주 700억달러 시대를 맞은 건설사들의 속은 곪아터져가고 있다.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업체수가 상당하고 대형건설사까지 적자를 내는 판국이다. 전문가들은 설계 등 고부가가치 분야의 기술력을 키우는 식으로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해외건설 수주액은 꾸준히 늘고 있다. 올 1분기 해외건설 수주액은 125억4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 증가했다. 월별 수주액도 1월 28억9000만달러, 2월 42억9000만달러, 3월 53억6000만달러로 증가세다. 연도별로도 2011년 591억달러에서 2012년 649억달러로 늘었고, 올해 목표액은 700억달러로 잡혀 있다.
하지만 건설사들의 가계부는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형사인 GS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이 올 1분기 '어닝쇼크'를 보였다. GS건설은 매출 1조8239억원, 영업손실 5355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매출 2조5159억원, 영업손실은 2198억원이다. 지난해 해외 수주실적에서 각각 2위와 4위를 차지했던 터라 업계에서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상장건설사 114개사의 이자보상비율이 64.8%로 전분기(184.3%)보다 크게 하락했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을 능력을 나타내는데 100% 이하면 벌어서 이자도 못 갚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여기에 매출액영업이익률도 1.4%로 전 분기(4.7%)보다 낮아졌고 세전이익률도 0.9%로 전분기(5.1%)보다 줄었다.
업계에서는 원전ㆍ플랜트 관련 설계 등 고부가가치 원천기술이 부족하다는 데서 이유를 찾고 있다. 실제 우리 건설업계의 시공능력은 뛰어난데 설계기술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내놓은 2012년 건설산업 글로벌 경쟁력 종합평가 결과 한국은 23개국 중 종합 7위였다. 하지만 분야별로 보면 설계경쟁력은 10위를 차지, 중위권 성적을 받았다.
이렇다보니 설계업체보다 적은 시공비를 받은 사례도 있다. 2009년 12월 따낸 186억달러(약 19조7800억원) 규모의 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 프로젝트에서 원전설계사인 미국 벡텔사는 전체 공사대금의 15%인 2조9000억원가량을 챙겼다. 시공사였던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각각2조6800억원과 2조1970억원을 받았다.
수익을 뜯어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총수익 46억5000만달러 중 절반 이상인 27억9000만달러가 벡텔의 몫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원천기술을 보유를 위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재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설관리경제연구실 수석연구원은 "시공능력은 우수하지만 고부가가치인 설계나 관리기술이 약해 사업 수익성이 낮은 것"이라며 "고부가가치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영길 대한건설협회 문화홍보실장은 "시공에 비해 이익을 더 낼 수 있는 설계ㆍ엔지니어링 분야의 국내 수준이 영세하다"면서 "현재 시공과 설계 등으로 분리된 산업구조를 '토탈산업' 구조로 바꿔 소프트웨어 능력을 키우는 등 창조경제의 선도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EPC(설계ㆍ구매ㆍ시공) 일괄 발주가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에 맞게 국내 건설 체계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국내업체 간 출혈경쟁 ▲원자재가격 급등 ▲현지 설계변경으로 인한 추가비 보전 ▲파키스탄ㆍ인도 등 인접국에서의 인력 조달 어려움으로 인한 공기 지연 등이 해외수주를 적자구조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박미주 기자 bey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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