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손흥민은 지난 몇 경기에서 교체로만 출전했다. 왜 이런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출전시키려 하는가?"
벽안의 외신기자가 날린 '돌직구'였다.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한국 A대표팀이 1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즈베키스탄과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A조 7차전을 치른다. 결전을 하루 앞두고 열린 공식 기자회견, 최 감독은 특유 담담한 톤으로 답변을 내놓았다.
"손흥민은 이번 우즈벡과의 홈경기부터 선발 출전시킬 생각이었다. 레바논전에서 승리하면 우즈벡-이란과의 경기에 부담이 확 줄어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생각대로 되질 않았다."
순간 보름 전 그의 발언이 오버랩 됐다. 지난달 말 대표팀 소집 당시, 최 감독은 손흥민의 기용 여부를 묻는 말에 "선수가 내 욕 하진 않던가"라고 농담 섞어 반문했다. 그는 "손흥민은 항상 대표팀에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라며 "출전시간이 적었기에 내가 그라도 불만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레바논전 결과에 따라 손흥민을 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그의 답변은 왜 손흥민의 중용을 '레바논전 이후'로 아꼈는지에 대한 뒤늦은 답변이었던 셈이다.
사실 이전에도 '손흥민'은 최 감독을 향한 질문의 단골 주제였다. 이날 기자회견도 마찬가지였다. 손흥민의 활용법, 그를 향한 기대, 노림수 등에 대한 물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최 감독의 답변엔 항상 같은 전제가 붙었다.
"손흥민도 중요하지만..." "손흥민은 물론이고..." "손흥민에게만 그런 역할이 주어지는 건 아니고..."
즉답을 피하는 자세는 아니었다. 오히려 손흥민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는 측면이 강했다. 대표팀 유니폼을 처음 입은 건 19살인 2011년. 이후 2년여 동안 그를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차출 논란, 최적 포지션 문제, 중용 여부 등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런 가운데 분데스리가에서 보여준 폭발적 성장세와 달리, 대표팀에선 엇박자를 냈다. 어린 선수가 축구에만 집중하기엔 힘든 환경이었다.
일각에선 최 감독이 손흥민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했다. 이동국·이근호 등에 비해 덜 신뢰한다는 얘기도 내놓았다. 우즈벡전 선발 출전 예고는 그에 대한 답변이었다. 정말 최 감독이 손흥민을 믿지 않는다면, 단순히 그가 받을 부담만 신경 썼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우즈벡전에 그를 내세울 이유가 없다. 가장 좋은 환경에서, 최상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게 하고픈 욕심이 있었을 뿐이었다. 레바논전 무승부로 계획은 틀어졌지만, '필승카드'로 손흥민을 꺼내든 것은 그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상적으로 경기 전날 기자회견에는 감독과 주장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이날은 달랐다. 최 감독은 '캡틴' 곽태휘가 아닌 '막내' 손흥민과 함께 들어왔다. 단순히 가장 주목받는 선수이기 때문이라기엔 다분히 이례적인 일. 이어지는 답변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부담스러운 경기에 선발로 나가게 됐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런 큰 경기, 부담스러운 경기를 통해 선수가 성장할 수 있다. 오히려 그동안 대표팀에서 어려워했던 모습을 털어낼 수도 있다. 지난 카타르전에서도 짧은 출전 시간에 강한 임팩트를 줬다. 이번 경기에서도 좋은 활약을 해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
부담감에 물러서기 보다는 당당히 맞서라는 의미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손흥민에게도 생소한 경험이었다. 수십 명의 국내외 취재진과 카메라 앞에 섰다. 스스로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라 긴장된다"라고 밝힐 정도. 그런 자리에 최 감독은 손흥민을 데려 왔다. 경기 당일은 그보다 수십, 수백 배의 긴장감과 부담감이 밀려올 터. 이에 대한 리허설이자 무언의 격려였던 셈이다.
스승의 마음을 읽었던 걸까. 손흥민도 이내 여유를 되찾고 기자회견에 임했다. 곤란한 질문에도 능숙한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솔직히 말해 그동안 대표팀에서 딱히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라고 인정한 뒤 "지금에 와서 후회할 필요도 없고,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내일 경기도 부담은 된다"라면서도 "내 욕심보다는 팀을 위해 희생하고, 형들과 손발을 잘 맞추면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전방과 측면 중 어느 자리가 편한지를 묻는 말에는 "매번 비슷한 질문에 매번 똑같은 답변을 하게 되는 것 같다"라며 노련하게 답하기도 했다. 아울러 "소속팀에서 모두 뛰어본 자리고, 어디에서나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동료들과 스위칭 플레이를 활발히 하고, 감독님이 주문하신대로 뒷공간을 파고들며 상대 수비를 괴롭힐 생각"자신 있게 말했다.
기자회견 막바지 즈음, 손흥민의 표정은 한결 풀어져 있었다. 이전 같은 자리에서 주장 곽태휘에 보여줬던 당당함과 여유마저 느껴졌다. 그런 제자를 지켜보는 최 감독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마음 편히 제 실력을 발휘할 무대를 만들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어린 나이에도 대범하게 난관을 이겨나갈 줄 아는데 대한 대견함이 엿보였다. 이제 남은 건 그라운드의 활약뿐이다.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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