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숲 해설가의 파트타임 일자리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친구를 만났다.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계에 몸담았었다. 훌쩍 남녘으로 농사짓겠다며 떠난 지 10년이 지났다. 지금은 남녘의 어느 산에서 숲 해설가로 있다. 산림청이 주최한 '2013 대한민국 산림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에 왔다가 짬을 내 세종시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40대 후반에 들어선 그녀도 나이가 들었다. 10년 전 젊은 패기와 생태환경에 대한 열정으로 농촌으로 떠났던 세월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지쳐 보였다.
우리는 이른 저녁 세종시 첫마을에 있는 닭갈비집으로 향했다. 많은 세종청사 공무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세종청사 정규직 공무원들의 목에는 파란색 신분증이 보이고 하루 동안 업무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닭갈비 3인분과 소주, 메밀국수를 시켰다. 아직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세종청사 공무원들이 음식점이 많은 첫마을에 자주 온다고 하자 그녀의 눈빛이 그들에게 집중됐다. 닭갈비가 익어가기 전에 그녀와 나는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말았다.
"숲 해설가는 어때?"
내 질문에 그녀는 벌써부터 자신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지쳐 버린 것일까. 얼굴빛이 막막하다. 그녀는 "일당 4만1000원"이라고 짧게 말한 뒤 닭갈비 한 점을 집어 올리고 소주잔도 뒤따라 비웠다. 우리 잔에는 새로운 소주 한 병이 추가됐다.
"하루 8시간 일하고 4만1000원 받는데 문제는 일당에 있는 것만 아니야. 8시간 동안 정작 숲 해설가 역할에 걸맞는 일을 하는 시간은 두 세 시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사무실 정리하고, 풀 뽑고, 심부름하고, 프린터하고…이른바 잡무."
그녀는 시간당 5125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이다. 10개월마다 계약을 다시 한다. 정규직 공무원이 아니다 보니 각종 수당과 복지는 없다. 곁에서 닭갈비를 먹고 있는 세종청사 공무원들의 모습에 집중하는 그녀의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아 보였다. 2013년 수당 등 모든 소득을 합친 정규직 공무원 월평균 임금은 435만원에 이르렀다. 한 달에 23일을 일한다고 계산하면 일당 18만9000원. 하루 9시간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2만1000원이다.
정부는 최근 공무원 파트타임(시간제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파트타임은 차별 없는 곳에서 시작돼야 한다. 숲 해설가로 있는 그녀가 하루 2~3시간 일하면 정규직 공무원 시급 2만1000원으로 계산 4만2000~6만3000원을 지급해야 한다. 지금의 그녀처럼 시급 5125원을 받는 파트타임을 늘린다면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비정규직 양산이다. 파트타임은 전일제 근무자와 차별이 없고 사회보장제도는 물론 각종 수당에서도 소외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은 차별과 소외는 물론 억압이 만연해 있다. 이것부터 뜯어 고치는 게 파트타임 일자리를 늘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내일 박람회에 일찍 가야 한다며 자리를 정리한 뒤 정규직(?)인 내가 계산을 했다. 총 4만3000원이 나왔다. 계산하는 모습을 뒤에서 언뜻 지켜본 그녀가 한 마디 던진다.
"오늘 내 일당만큼 써버렸네."
어둑한 시간에다 구름마저 잔뜩 끼어 하늘은 시커멓게 변하고 있었다. 닭갈비집을 나서는 우리들의 등 뒤로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익어가는 닭갈비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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