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지난 5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바르셀로나까지 꺾었다. 나 역시 4년 동안 세 번째 결승에 올랐다. 이제는 우승할 때가 됐다."
결승전을 앞두고 밝힌 굳은 결의. 간절한 소망은 마침내 이뤄졌다. 결승전 29번째 슈팅 만에 마침내 메이저대회 챔피언에 올랐다. 아르연 로벤(바이에른 뮌헨)이었다.
뮌헨은 26일 오전(한국시각) 영국 런던 웸블리에서 열린 2012-13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자국 라이벌' 도르트문트에 2-1로 이겼다. 뮌헨은 2010년과 2012년 준우승에 그쳤던 아쉬움을 딛고 2000-2001시즌 이후 12년 만에 유럽 무대 최고봉에 올랐다. 아울러 통산 다섯 번째 우승으로 리버풀과 더불어 최다 우승 공동 3위에 올랐다.
이날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로벤이었다. 후반 14분 만주키치의 선제골을 도운데 이어 후반 43분에는 결승골까지 터뜨리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사실 로벤은 그동안 '결승전 징크스'에 발목 잡혀왔다. 앞선 두 차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물론, 네덜란드 대표팀으로 나선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도 마지막 순간 부진했다. 세 경기에서 날린 슈팅은 모두 26개. 이 가운데 골문을 향한 건 고작 9차례였다. 단 하나도 골문을 열지 못했다. 특히 지난 시즌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선 연장전까지 무려 15개의 슈팅을 퍼부었다. 첼시 전체 슈팅(9개)보다도 많았다. 그럼에도 유효 슈팅은 겨우 5개였고, 결국 팀도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이날도 악몽은 반복되는 듯 했다. 적어도 전반까지는 그랬다. 전반 29분과 42분 결정적인 골키퍼 1대1 기회를 모두 날렸다. 둘 다 상대 수문장 바이덴펠러의 선방에 막히고 만 것. 머리를 감싸 쥐는 그의 표정엔 옅은 불안감이 묻어나왔다.
반전은 후반 들어 시작됐다. 로벤은 리베리와 함께 상대 수비를 거세게 몰아 붙였다.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돌파력을 앞세워 도르트문트 수비 뒷공간을 노렸다. 결국 공격 포인트도 모두 배후 침투에서 나왔다.
후반 14분 리베리가 왼쪽 측면에서 공을 잡았다. 수비수 세 명이 리베리에 달려드는 찰나를 로벤은 놓치지 않았다. 빈 공간을 향해 순간적으로 달려들었고, 리베리 역시 정확한 패스를 그에게 연결했다. 로벤은 지체 없이 땅볼 크로스를 문전으로 보냈고, 이는 만주키치의 오른발에 정확히 맞으며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앞서가던 뮌헨은 후반 21분 귄도간에 페널티킥 골을 내주며 1-1 동점을 허용했다. 이어진 치열한 공방전. 전광판 시계는 어느덧 후반 43분을 가리켰다. 모두가 연장전을 떠올리던 그 때, 로벤은 마침내 번뜩였다. 이번에도 리베리와의 호흡이었다. 리베리는 후방에서 길게 올라온 롱패스를 상대 수비수와 몸싸움을 이겨낸 뒤 트래핑했고, 이를 힐킥으로 내줬다. 공은 수비수를 살짝 맞고 굴절돼 다시 도르트문트의 차지가 되는 듯 했다.
그 순간, 전광석화같이 로벤이 뒤에서 뛰어 들었다. 공을 낚아챈 그는 엄청난 순간 가속도로 상대 수비 세 명 사이를 돌파했다. 수비수들의 뒤따라가려는 움직임은 소용없었다. 이어진 골키퍼 1대 1 기회, 이번엔 놓치지 않았다. 침착한 왼발 슈팅으로 골문 구석을 갈랐다. 뮌헨이 세 번의 도전 끝에, 로벤이 29번의 슈팅 끝에 마침내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경기 종료 휘슬, 로벤은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렸다. 예전의 쓴 맛이 아닌, 달콤함이 느껴지는 환희의 눈물이었다. '빅이어 트로피'를 들어 올린 그의 표정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마지막 순간 어떻게든 파고들어 골을 넣겠다는 생각만 했다"라며 "그 이후 결과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라고 감격에 겨워했다. 이어 "만감이 교차하고 있는, 정말 대단한 기분"이라며 "많은 이들이 내게 오늘 골을 넣을 것이라고 말해줬다"라며 웃어보였다.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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