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는 없다?…국채발행 놓고 與 일각·朴 싱크탱크서도 비판 "증세 불가피"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또 다시 재원이 문제다. 박근혜 정부가 최대 20조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카드를 꺼내들면서다. 여야 모두 추경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재원조달 방안 등에서 이견을 보였다.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증세 없는 복지'에 따른 재원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하지만 전선이 달라졌다. 증세 없는 복지, 증세 없는 추경편성의 입지가 좁아지는 모양새다. 복지재원 논란이 벌어졌던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비과세 감면을 축소하고 정부지출 구조 개혁으로 복지 재원을 마련한다고 했다. 새누리당도 이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이번엔 새누리당에서 공공연하게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국가미래연구원에선 재정절벽을 막기 위한 종합적인 세재개편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 정부의 '빚잔치' 재원 방안
추경 예산의 재원조달은 국채발행으로 가닥이 잡혔다. 정부와 여당은 세율을 통한 직접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대행은 "추경 규모는 확정이 안 됐지만 전액 국채 발행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전액 국채로 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정도로 그리 큰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나 의장 대행 등은 1일 밤 여의도의 모처에서 비공개 간담회를 하고 이 같은 재원 방안 마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국채 발행이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당분간 2%대의 저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복지수요를 감안할 때 매년 추경 편성의 요건이 갖춰진다. 정부가 증세를 추진하지 않는 한 국채 발행을 통해 필요재원을 계속 메워야 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유지해온 균형재정이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저성장 기조가 단기간 내 해소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국채발행으로 재정적자를 계속 메울 가능성이 있고 재정건정성도 크게 악화될 수 있다"며 "정치적으로도 국채발행은 현 세대의 부담을 미래세대로 전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대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젊은 세대들의 조세저항을 불러올 위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與일각·朴싱크탱크서도 증세론 솔솔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박 대통령의 주변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증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 경제참모로 꼽히는 이경태 고려대 석좌교수는 "현재 세율로는 재정절벽이 불가피하다"며 "이를 막기 위해 종합적 세제개편, 즉 보편적 증세를 박 대통령 임기 내에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이 발행한 '근혜노믹스의 이해' 보고서를 통해서다. 물론 이 교수는 '현 정부 5년간은 증세 없이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지만, 결과적으로 재정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증세 불가론에 동조하던 새누리당도 미묘한 변화를 보였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유승민 의원은 국채 발행을 통한 재원 마련에 대해 "모든 돈을 미래의 납세자에게 거둬 현재의 정부가 쓰는 건 비겁하다"며 "추경 이후에도 복지 재원 등이 필요할텐데, 그때마다 국채를 발행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도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결국은 중장기적으로 증세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정전문가로 알려진 나 의장 대행도 지난해까지는 전면적인 세제 개편을 주장해왔다.
현 장관은 지난달 30일 당정청 워크숍에서 재원 부족으로 인한 증세 필요성이 제기되자 "필요재원 확보 계획이 이미 나와 있는데 계획에 맞춰 추진해야 한다"면서도 "재원 확보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 짓고 증세를 한다거나 국정과제 일부를 빼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당장 증세를 안 하겠지만, 재원 마련에 차질이 생길 경우에는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참여정부 수준으로 세율 올리면 해결"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세제실장, 관세청장, 국세청장 등을 지낸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세금부담률을 평균 19%에서 21%로 올렸음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4%포인트 정도 낮았다"면서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이를 19%로 되돌리면서 연간 26조원의 세수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세부담률 1%포인트마다 연세수 13조원으로 계산할 경우 정부가 증세를 통해 세금부담률을 참여정부 수준으로 올리면 5년간 130조원의 세수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단순계산으로도 증세만 하면 재정건전성 훼손 없이 135조원으로 예상되는 복지재원의 대부분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 중순쯤 추경안을 제출해 4월 국회 내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추경 재원 조달을 둘러싼 여야의 인식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추경 편성 또한 정부조직법 처리와 마찬가지로 늑장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전망이다.
이민우 기자 m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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