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화폐개혁(리디노미네이션)이 새 정부의 정책 이슈로 조심스레 떠올랐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에서 "경제계 일각에서 화폐단위 변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면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제 청문회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발 후퇴했지만, 화폐개혁이 이처럼 공론화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그 말이 가지는 폭발성으로 탁상 위에 올리기 쉽지 않은 이슈다. 하지만 경제계 및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물밑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사안이다. 화폐 단위를 100분의 1, 또는 1000분의 1로 낮춰야 한다는 리디노미네이션 주장의 근거는 분명하다. 경제 규모의 비약적인 확대와 60년간 묶여 있는 화폐 단위 사이의 부조화다.
우리 경제 규모는 여러 부문에서 '조(兆)원' 단위를 넘어섰다. 금융시장의 연간 결제액은 6경(京)원에 이른다. 대기업의 매출과 순익도 조원 단위에 들어선 지 오래다. 화폐 단위에 많은 거품이 끼면서 돈에 대한 의식이 무뎌지고 계산상의 비효율이 발생하며 낭비 요소도 커졌다. 실제 커피전문점에서는 '아메리카노 3.0'식으로 쓰는 등 1000원 단위를 버리는 경우가 많다. 현행 화폐 단위의 불편함이 피부에 와 닿는다는 증거다.
높아진 나라 위상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1달러당 세 자릿수(1000원대)인 원화가 헐값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의 복지 재원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하자금을 양성화해 세수를 늘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화폐개혁에는 비용과 충격이 따른다. 새 화폐의 제조비용과 물품 가격의 변동은 물론 현금지급기, 자판기 등 관련 기기와 시스템을 모두 교체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하자금 양성화로 복지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마음에 걸린다. 원칙과 정도로 접근하지 않고 특정한 의도를 앞세우면 성공하기 어렵다. 1962년 화폐개혁의 실패가 산 교훈이다. 재산 은닉, 실물 투기, 쪼개기 등 편법과 부작용만 부를 가능성이 크다. 인플레 심리까지 자극한다면 실익은 없고 대가만 치르게 될 것이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서둘 것은 없다. 하지만 경제 환경의 변화를 따져볼 때 진중한 논의를 시작해 볼 만한 시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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