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짝퉁 명품초콜릿, 조잡한 포장, 유통기한이 3개월 남은 초코바…."
본지 기자가 14일 화이트데이를 맞아 편의점, 제과점 등을 돌며 불황형 실속선물을 내세운 중저가 사탕 선물세트를 구입해 분석한 결과, 내용물이 크게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 역시 거품 투성이다. 조화꽃에 사탕 5개, 곰인형과 사탕 3개ㆍ초콜릿 1개가 1만원을 훌쩍 넘는다. 1만~2만원짜리 '불황형 실속선물'이라고 하지만 내용물은 실속이 아니라 부실에 가깝다. 말만 '저가, 실속'이지 알맹이는 허술한 화이트데이 거품 상술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주요 편의점업체들은 올해 화이트데이 선물세트를 1만원대 중저가 상품 위주로 준비했다. GS25는 전체 세트 상품 중 70%를 1만원대 중저가로 준비했고 세븐일레븐은 1만원 이하 제품을 전년대비 20% 가량 늘려 선보였다. 이렇게 구성하면서 업체들은 하나같이 '알뜰하고 실속있게' 선물을 준비하라고 제언했다.
정말 '불황형 실속' 선물일까. 취재결과 '불황형 부실'에 무게가 실렸다.
먼저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판매하는 3만2000원짜리 곰인형 사탕바구니세트를 구매했다. 포장을 뜯자 안에는 중국산 곰인형 한 개와 초콜릿 2개, 초콜릿세트 1개, 초콜릿바 2개, 비스킷 4개, 미니젤리 14개가 들어 있다. 초콜릿은 개당 200원짜리, 초콜릿세트는 짝퉁 페레로로쉐다. 무엇보다 포장지의 일부는 초콜릿이 노출될 정도로 찢겨나갔으며 유통기한도 3개월밖에 남아있지 않다.
제과 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초코바 유통기한은 보통 12개월"이라고 설명했다. 이대로라면 최소 2012년 6월에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2013년 6월까지로 유통기한이 찍힌 이 제품은 드러그스토어에서 3개에 1000원씩 판매되고 있다.
편의점 CU에서 파는 1만5000원짜리 사탕바구니를 뜯어보자 알사탕 한 무더기와 조화 꽃 속 묻힌 츄파춥스 5개가 박혀 있다. 이 곳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제품은 1만원짜리 츄파춥스 50개들이 통이다. 신촌 현대백화점에서는 유리병에 든 사탕 2병 세트가 1만 2000원~1만5000원에 판매됐다.
박소하(22) 편의점 직원은 "바구니와 인형이 포함되면 일단 사탕 개수와 무관하게 2만원대 이상"이라며 "인형이 있으면 처음에는 그럴듯 해보이지만 결국은 다 버릴 것들이다. 낭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과점에서 판매하는 제품들도 가격 거품이 심하기는 마찬가지. 파리바게뜨에서 판매하는 1만1000원짜리 곰인형 선물세트에는 파란색 옷을 입은 곰인형과 유가맛 사탕 3개, 초콜릿 1개가 달랑 들어있다. 작은 사탕 한 무더기를 부케 모양의 장식컵 안에 넣어놓은 제품은 7500원이다. 1만4000원짜리 제품에는 꽃장식으로 꾸민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안에는 쿠키와 낱개초콜릿 각각 6개, 사탕봉지 1개가 들어있다.
대학생 이준희(27)씨는 "사탕 선물들이 포장과 부피가 너무 크고 내용물은 병아리 눈물만큼 들어있다"며 "그렇다고 내용물이 제대로 들어간 것을 사자니 학생이 사기에는 가격이 비싸져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업계의 이런 상술을 남성들의 소비트렌드를 이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여성들은 마트며 온라인몰 등에서 꼼꼼히 따져보며 구매하지만 남성들은 바구니나 박스로 크게 묶음된 것 위주로 사고, 하나하나 그 안의 내용물까지 따져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남성들은 1만원대라면 그저 가격만 보고 저렴하다고 생각하지, 가격대비 내용물이 충실한지까지는 따지지 않아 이런 상술 마케팅이 통한다고 보고 있다.
이런 연유로 화이트데이 매출은 2월14일 밸런타인데이 보다 항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는 2010년 화이트데이 매출이 밸런타인데이 때보다 32.7% 높았으며 2011년과 2012년에도 각각 65.4%, 42.2%로 더 많았다.
직장인 강민진(31)씨는 "불황이라고 사탕을 예년보다 저렴하게 출시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하나씩 따져보면 사탕 가격에 거품이 끼어있는 것은 불황인 올해에도 똑같이 되풀이 되고 있다"며 "가격대비 가치가 없는 제품들이 단지 1만원대라해서 불황형 실속 선물로 불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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