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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법의 보루를 지키는 헌재 '백송'의 기구한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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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서울스토리]법의 보루를 지키는 헌재 '백송'의 기구한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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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가장 뉴스의 초점이 된 국가기관이 헌법재판소다. 헌재는 수장 후보에 오른 인물이 각종 부정과 비리 혐의에 휩싸이면서 그 위상마저 크게 흔들렸다. 13일 끝내 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국민의 시선은 따가웠다.


여기서 국민들만 법의 최후 보루가 흔들리는 것을 안따깝게 지켜본 건 아니다. 600여년 된 '백송' 한 그루도 이번 사태를 처음부터 목격한 증인이다. 백송은 워낙 오랜 세월동안 모진 비바람을 견뎌온 까닭에 몸안에 정령이 깃들여 있을 법 하니 마땅히 증인 중 하나다.

백송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를 나와 청와대 방향으로 100m 정도 올라가면 헌재 뒷마당에 있다. 북촌 초입에 해당된다. 백송 좌우로 경복궁과 창덕궁이 각각 500m, 1km 이내에 위치해 있으며 세종대왕이 말년에 집무를 보다 승하한 동별궁(세종의 여덟째 아들 영응대군의 왕가, 현 풍문여자고등학교)터가 인접해 있다. 따라서 여러 궁궐들의 한 가운데 자리해 있는 셈이다.


예전 북촌에는 훈련도감이나 무기고 등 군사시설이 많았다. 또한 양반 사대부의 주거지였다. 조선 후기 외척인 풍양 조씨가 북촌의 상당 부분을 소유했었고, 구한말에는 수구세력의 중심인 명성황후 민비 일족들이 수만평을 소유했던 곳이다. 그 전에는숙종 계비 인현왕후 생가가 위치해 있던 것을 더 해 북촌 일대는 외척과 그 세력이 끊임없이 발호해 왔다. 권력을 지켜줄 힘이 있어서 였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스토리]법의 보루를 지키는 헌재 '백송'의 기구한 생애

정문에 가서 수위에게 백송 보러 왔다고 하자 아무 말없이 출입증을 내준다. 아마도 백송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던 듯 하다. 백송 크기는 높이 14m, 밑부분 둘레 4.25m에 달한다. 그 웅장함과 기품은 다 설명하기 힘들다. 웬만하면 직접 보기를 권한다. 현재 서울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고 나무 줄기 여러군데 수술 자욱이 덮혀 있다. 허나 흰 살결이 무척 곱고 품위 있다.


잎이 세개씩 뭉쳐 있는 삼엽송에 속한다. 줄기껍질이 흰색을 띠고 있어 백골송, 백피송으로도 불린다. 껍질은 어릴 때 회청색을 띠다가 자라면서 회백색으로 변한다. 나무는 두 줄기로 맨 꼭대기에 까치둥지 하나씩 이고 있다. 윤성지 문화해설사는 "나무가 구한말 이전에 가장 풍성했다. 지금은 늙고 쇠락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 처음 백송의 위용에 놀랐던 안목을 순식간에 흐려놓았다. '도대체 예전엔 얼마나 더 웅장했다는 거야 ?'


600여년전 중국의 한 사신은 새로 개창한 조선 땅 한양에 지금의 백송 한 그루를 가져왔다. 곧 사신이 돌아가고, 백송은 모화(慕華)의 파수꾼으로 타향에 홀로 남겨졌다. 백송은 자신의 몸속에 몇개의 나이테가 새겨질 즈음 어느날 밤 이방원의 군대가 정도전을 피습한 후(옛 한국일보사 터) 백송 주변을 지나 경복궁 동쪽문을 열고 왕궁을 침탈하던 사건을 지켜봤다. 또 몇 개의 나이테가 더해지고 나서 어진 임금이 젊은 인재를 모아 집현전을 열고, 한글을 창제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 후 궁궐이 불타거나 왕들이 여러 궁으로 옮겨다니던 일도 수없이 목격했다. 그저 한적한 고향 숲에서 필목(匹木)으로 살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다.


백송의 생애에서 이번 사태는 그다지 큰 사건은 아니다.백송은 불과 몇 세대 전에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목격한 이후 점차 쇠락해 가고 있다.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바로 1884년 '갑신정변'이다. 그래서 백송은 여지껏 개화(開化)의 상징이 됐다. 그 연유는 이렇다.


구한말 백송이 있는 자리에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의 집터가 있었다. 연암 박지원(1737∼1805년)은 북학파의 거두다. 연암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외교관, 소설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또한 홍대용, 박제가 등과 중상주의를 주창, 실학의 한 분파인 북학파를 형성했다. 그 제자로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이 있다. 박규수도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의 사상을 접합시켜 북학파를 계승했다. 박규수는 추사 김정희와 교류가 두터웠고 흥선대원군과도 밀접했다. 우의정으로 은퇴한 뒤 후학을 양성하며 박지원 문집을 강의하던 중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홍영식 등과 교류했다.


바로 박규수 집터와 담장 하나로 홍영식의 집터였다. 꼭 백송의 두 줄기에 까치 둥지가 하나씩 자리잡은 것과 데자뷰를 이룬다. 바로 인근(현 정독도서관 자리)에 김옥균, 서재필, 박영효 등이 살았다. 이들은 모두 개화파로 불린다. 이들이 북촌에 살았던 것은 일부 남인 출신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노론 가문의 후예였던 까닭이다. 당시 청나라세력을 결탁한 민씨 세력이 발호했던 시기로 이들은 권력의 소외감에 진저리칠 법도 했다. 워낙 오랫동안 권력을 누린 세력이니 말이다. 결국 1884년 개화파는 우정국 낙성식에 일본 군대를 이끌고 수구세력을 처단했다. 이들의 '3일천하'는 사실상 친일 쿠테타다.


개화파가 서촌에 모여 경제력을 장악, 세력을 형성한 중인계급과 손을 잡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촌 세력은 북학파의 영향을 받아 개화파와 성격적으로 밀접했다. 당시 상공업에서 재력을 모은 서촌세력 또한 민씨 일족과 경제적인 충돌이 불가피한 시점였다는 점에서 연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저 한번 해보는 가정이다.


아무튼 정변의 주역은 대부분 망명하거나 암살 당하는 등 끝내 뿔뿔히 흩어졌다. 이후에 최초의 근현대식 병원인 '제중원'이 들어섰다가 이전했고 이상재선생이 살기도 했다. 지금 백송이 있는 자리 뒷편으로 '윤보선 가옥'이 있다. 윤보선 가옥은 개량 한옥 형태로 1870년에 지어졌다. 양반집 형태의 전형적인 건물이다. 대문이 서향인게 특이하다. 당시 얼마나 떠르르했는지 지금도 그 위용이 여전하다.

[서울스토리]법의 보루를 지키는 헌재 '백송'의 기구한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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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가옥은 장면 가옥과 더불어 4.19 혁명 전후 한국 민주주의 정치의 산실 역할을 했다. 윤 해설사는 "윤가는 선대로 조선 중기 윤두수, 윤선도 등이 있고 왕비를 배출한 외척, 노론 출신의 후예"라며 "을사보호조약 당시 일본 편에 가담했고, 경부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해 조선 제일 거부가 됐다"고 윤보선 집안 내력을 들려줬다. 현재 윤보선 가옥은 개방하지 않아 집안을 자세히 보기는 어렵다.


그처럼 백송 주변은 오랫동안 권력 투쟁이 들끓었다. 게다가 귀래한 운명 탓일까 ? 외세와도 떨 수 없는 운명을 지녔다. 하여간 백송은 이번에 한 사건을 더 했다. 개화의 상징이라기보다 비운의 상징이 더 옳을 듯 싶다. 앞으로 백송이 법의 보루를 지키는 상징으로 거듭나 더이상 외세도 비극도 피비린내나는 권력 투쟁도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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