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울스토리]법의 보루를 지키는 헌재 '백송'의 기구한 생애

시계아이콘03분 02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서울스토리]법의 보루를 지키는 헌재 '백송'의 기구한 생애
AD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가장 뉴스의 초점이 된 국가기관이 헌법재판소다. 헌재는 수장 후보에 오른 인물이 각종 부정과 비리 혐의에 휩싸이면서 그 위상마저 크게 흔들렸다. 13일 끝내 사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국민의 시선은 따가웠다.


여기서 국민들만 법의 최후 보루가 흔들리는 것을 안따깝게 지켜본 건 아니다. 600여년 된 '백송' 한 그루도 이번 사태를 처음부터 목격한 증인이다. 백송은 워낙 오랜 세월동안 모진 비바람을 견뎌온 까닭에 몸안에 정령이 깃들여 있을 법 하니 마땅히 증인 중 하나다.

백송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를 나와 청와대 방향으로 100m 정도 올라가면 헌재 뒷마당에 있다. 북촌 초입에 해당된다. 백송 좌우로 경복궁과 창덕궁이 각각 500m, 1km 이내에 위치해 있으며 세종대왕이 말년에 집무를 보다 승하한 동별궁(세종의 여덟째 아들 영응대군의 왕가, 현 풍문여자고등학교)터가 인접해 있다. 따라서 여러 궁궐들의 한 가운데 자리해 있는 셈이다.


예전 북촌에는 훈련도감이나 무기고 등 군사시설이 많았다. 또한 양반 사대부의 주거지였다. 조선 후기 외척인 풍양 조씨가 북촌의 상당 부분을 소유했었고, 구한말에는 수구세력의 중심인 명성황후 민비 일족들이 수만평을 소유했던 곳이다. 그 전에는숙종 계비 인현왕후 생가가 위치해 있던 것을 더 해 북촌 일대는 외척과 그 세력이 끊임없이 발호해 왔다. 권력을 지켜줄 힘이 있어서 였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스토리]법의 보루를 지키는 헌재 '백송'의 기구한 생애

정문에 가서 수위에게 백송 보러 왔다고 하자 아무 말없이 출입증을 내준다. 아마도 백송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던 듯 하다. 백송 크기는 높이 14m, 밑부분 둘레 4.25m에 달한다. 그 웅장함과 기품은 다 설명하기 힘들다. 웬만하면 직접 보기를 권한다. 현재 서울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고 나무 줄기 여러군데 수술 자욱이 덮혀 있다. 허나 흰 살결이 무척 곱고 품위 있다.


잎이 세개씩 뭉쳐 있는 삼엽송에 속한다. 줄기껍질이 흰색을 띠고 있어 백골송, 백피송으로도 불린다. 껍질은 어릴 때 회청색을 띠다가 자라면서 회백색으로 변한다. 나무는 두 줄기로 맨 꼭대기에 까치둥지 하나씩 이고 있다. 윤성지 문화해설사는 "나무가 구한말 이전에 가장 풍성했다. 지금은 늙고 쇠락해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 처음 백송의 위용에 놀랐던 안목을 순식간에 흐려놓았다. '도대체 예전엔 얼마나 더 웅장했다는 거야 ?'


600여년전 중국의 한 사신은 새로 개창한 조선 땅 한양에 지금의 백송 한 그루를 가져왔다. 곧 사신이 돌아가고, 백송은 모화(慕華)의 파수꾼으로 타향에 홀로 남겨졌다. 백송은 자신의 몸속에 몇개의 나이테가 새겨질 즈음 어느날 밤 이방원의 군대가 정도전을 피습한 후(옛 한국일보사 터) 백송 주변을 지나 경복궁 동쪽문을 열고 왕궁을 침탈하던 사건을 지켜봤다. 또 몇 개의 나이테가 더해지고 나서 어진 임금이 젊은 인재를 모아 집현전을 열고, 한글을 창제하는 모습도 보았다. 그 후 궁궐이 불타거나 왕들이 여러 궁으로 옮겨다니던 일도 수없이 목격했다. 그저 한적한 고향 숲에서 필목(匹木)으로 살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다.


백송의 생애에서 이번 사태는 그다지 큰 사건은 아니다.백송은 불과 몇 세대 전에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목격한 이후 점차 쇠락해 가고 있다.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바로 1884년 '갑신정변'이다. 그래서 백송은 여지껏 개화(開化)의 상징이 됐다. 그 연유는 이렇다.


구한말 백송이 있는 자리에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의 집터가 있었다. 연암 박지원(1737∼1805년)은 북학파의 거두다. 연암은 조선 후기 학자이자 외교관, 소설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또한 홍대용, 박제가 등과 중상주의를 주창, 실학의 한 분파인 북학파를 형성했다. 그 제자로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이 있다. 박규수도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의 사상을 접합시켜 북학파를 계승했다. 박규수는 추사 김정희와 교류가 두터웠고 흥선대원군과도 밀접했다. 우의정으로 은퇴한 뒤 후학을 양성하며 박지원 문집을 강의하던 중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홍영식 등과 교류했다.


바로 박규수 집터와 담장 하나로 홍영식의 집터였다. 꼭 백송의 두 줄기에 까치 둥지가 하나씩 자리잡은 것과 데자뷰를 이룬다. 바로 인근(현 정독도서관 자리)에 김옥균, 서재필, 박영효 등이 살았다. 이들은 모두 개화파로 불린다. 이들이 북촌에 살았던 것은 일부 남인 출신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노론 가문의 후예였던 까닭이다. 당시 청나라세력을 결탁한 민씨 세력이 발호했던 시기로 이들은 권력의 소외감에 진저리칠 법도 했다. 워낙 오랫동안 권력을 누린 세력이니 말이다. 결국 1884년 개화파는 우정국 낙성식에 일본 군대를 이끌고 수구세력을 처단했다. 이들의 '3일천하'는 사실상 친일 쿠테타다.


개화파가 서촌에 모여 경제력을 장악, 세력을 형성한 중인계급과 손을 잡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촌 세력은 북학파의 영향을 받아 개화파와 성격적으로 밀접했다. 당시 상공업에서 재력을 모은 서촌세력 또한 민씨 일족과 경제적인 충돌이 불가피한 시점였다는 점에서 연합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저 한번 해보는 가정이다.


아무튼 정변의 주역은 대부분 망명하거나 암살 당하는 등 끝내 뿔뿔히 흩어졌다. 이후에 최초의 근현대식 병원인 '제중원'이 들어섰다가 이전했고 이상재선생이 살기도 했다. 지금 백송이 있는 자리 뒷편으로 '윤보선 가옥'이 있다. 윤보선 가옥은 개량 한옥 형태로 1870년에 지어졌다. 양반집 형태의 전형적인 건물이다. 대문이 서향인게 특이하다. 당시 얼마나 떠르르했는지 지금도 그 위용이 여전하다.

[서울스토리]법의 보루를 지키는 헌재 '백송'의 기구한 생애


AD

윤보선 가옥은 장면 가옥과 더불어 4.19 혁명 전후 한국 민주주의 정치의 산실 역할을 했다. 윤 해설사는 "윤가는 선대로 조선 중기 윤두수, 윤선도 등이 있고 왕비를 배출한 외척, 노론 출신의 후예"라며 "을사보호조약 당시 일본 편에 가담했고, 경부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해 조선 제일 거부가 됐다"고 윤보선 집안 내력을 들려줬다. 현재 윤보선 가옥은 개방하지 않아 집안을 자세히 보기는 어렵다.


그처럼 백송 주변은 오랫동안 권력 투쟁이 들끓었다. 게다가 귀래한 운명 탓일까 ? 외세와도 떨 수 없는 운명을 지녔다. 하여간 백송은 이번에 한 사건을 더 했다. 개화의 상징이라기보다 비운의 상징이 더 옳을 듯 싶다. 앞으로 백송이 법의 보루를 지키는 상징으로 거듭나 더이상 외세도 비극도 피비린내나는 권력 투쟁도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규성 기자 peac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1510:17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정부가 추진해 온 FTA(자유무역협정)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 25.12.1209:58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 25.12.1108:51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보완대책을 통해 설립된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단양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 북부권에 위치한 농가 650곳에서 생산한 사과를 세척·선별·포장·출하하는 과실 전문 APC입니다. 생산단계부터 관리하고 사과 브랜드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 농가엔 더 큰 수익을, 소비자들에겐 품질 좋은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 25.12.1010:18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

  • 25.12.0909:11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은 22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59개 국가와 FTA를 활용한 무역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 이후 약 21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1위인 90%까지 더 넓고 촘촘하게 확충할 방침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에 따라 한국의 수출 시장이 넓어진 만큼 수출액도 2004년 2538억달러에서 2024년 6836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