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의 불법ㆍ비리에 대한 법원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법원은 지난달 31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1심재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이어 지난 4일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을 공판에 회부했다. 국회 청문회에 정당한 이유 없이 불참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약식기소한 사건을 법원이 정식 재판으로 넘긴 것이다. 지난해 이호진 태광그룹 전(前)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법정구속한 엄벌 기조가 올해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예전엔 법원이 이러지 않았다. 배임ㆍ횡령 등의 혐의로 법정에 선 대기업 오너들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속칭 '정찰제 판결'을 내려 구속을 면케 해 주는 게 관례였다. 2006년 이후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그런 판결을 받았다. 형법상 집행유예가 징역 3년 이하 형에 대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형량을 맞췄던 것이다. 법원은 이런 관대한 판결을 내리면서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나 '공익활동' 등을 구실로 내세웠다.
그러던 법원의 모습이 달라진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법원이 경제민주화 바람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라고 비판한다. 기업인의 법정구속을 불필요하게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부 학자들은 기업인이 회사에 피해를 입혔더라도 단지 경영상 판단의 잘못 때문이라면 배임ㆍ횡령죄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반응들은 귀기울여 들어볼 구석이 없지 않다.
하지만 법원의 달라진 태도를 그렇게 단선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법원은 2009년 이후 기업인을 포함한 화이트칼라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강화해 왔다. 기업관련 비리에 대한 재판에서 재량적 관용의 범위가 그만큼 축소됐다. 기업경영의 사법적 환경이 바뀌면서 새로운 리스크 요인이 된 것이다.
사법적 환경만이 달라진 게 아니라 기업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도 높아졌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에 대한 사회적 비판도 고조됐다. 기업은 이런 시대적 요구와 환경의 변화를 잘 읽을 필요가 있다. 나아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구태나 비리의 남은 꼬리도 다 잘라내는 혁신적 윤리경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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