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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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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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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하림의 요즘 가슴 속은 가시덤불 같이 어수선했다. 아직 살아갈 날이 구만리 같았는데 손 흔들어 닿을 지척지간도 잘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떼긴 떼야겠는데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는, 사막에 불시착한 이차대전 독일군 조종사와 같았다. 물어봤자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다. 하긴 부모, 조부모 잘 만나 일찌감치 인생의 그린죤으로 직행한 친구들도 있겠고, 운수 좋게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자리 잡은 친구들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했다. 자기처럼 빽도 없고, 물려받은 것도 없는 놈들은 일찌감치 젊은 나이에 갈 길 모르는 나그네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 운명이었다. 철학원 영감의 말마따나, ‘어두워.’ 하는 표현이 딱 맞는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학원은 잘 되어가?”
제사 다 지내고 절한다고 그제야 동철이 안부를 꺼내었다.
“아니. 그만 둔지 오래야. 논술학원도 한물갔어. 벌써 몇 달 됐는걸....”
하림은 술잔으로 입술을 축이며 신통치 않은 표정으로 받았다.
“원장이 돈 떼어먹고 달아났어. 밀린 집세랑 빚만 잔뜩 남겨놓고....마누라가 와서 자기 남편 찾아달라고 야단을 떨었지만 마누라도 모르는 행방을 우리라고 알 턱이 있나? 없는 놈 콧구멍에서 마늘 빼먹는다고, 그 통에 나도 몇 백 날렸지, 뭐람.”
하림이 투명스럽게 덧붙였다.
“하하. 그래도 너희 원장 뭘 아는 사람인데? 그럴 땐 삼십육계가 제일이지. 비겁하다, 나쁜 놈이다, 그런 건 다아 헛소리야. 그런 소리 다아 들어주다간, 옥상에서 거꾸로 다이빙 하던가, 차 안에 연탄불 피워놓고 얌전하게 자는 꼴 밖에 도리가 없거든.”
“끔직한 소리 그만해요! 술맛 떨어지게시리....”
동철의 넉살에 윤여사가 짐짓 진저리치는 시늉을 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농담인 줄 알지만 다들 마음이 구름이 낀 것처럼 무거워졌다. 요즘은 서로 간에 살아가는 이야기 꺼내기가 불편한 진실처럼 무서운 세상이었다.
“그래, 이젠 뭘 할 생각이니?”
“몰라.”
하림은 하릴없이 젓가락으로 흑돼지 조각을 뒤집었다.
“당분간 그냥 지내볼 생각이야. 생각난 김에 말인데, 너 거기 망명정부에 자리 있음 하나 줄래?”
“후후, 좋지! 뭘 할래? 국방부 장관? 외무부 장관?”
동철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왕이면 국정원장이나 시켜줘.”
“아, 국정원장. 좋지, 좋아! 그래, 너 지금부터 국정원장 맡아버려라!”
동철이 큰 인심이라도 쓰듯이 말했다.
“난 악질적인 국정원장이 될거다. 불법사찰도 하고, 맘에 안 되는 놈들은 모조리 잡아서, 물고문도 하고, 전기고문도 해야지.”
하림은 농담을 농담 같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안 돼! 우리 망명정부에서는 폭력은 안 돼요! 이놈의 지긋지긋한 폭력이 싫어서 달아나는 사람들한테 무슨 그런 끔직한 소릴....?”
동철 역시 진짜라도 되는 양 정색을 하며, 외마디를 질렀다. 둘 다 무대 위의 배우 같았다. 그게 재미있었던지 윤여사가 까르르르, 소리 내어 웃었다.






글 김영현/ 그림 박건웅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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