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딸과 아들을 하나씩 둔 네 식구의 가장이다. 여느 가정처럼 각자 바쁜 세상을 살아가고 있어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서로 얘기하는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초등학교 4학년 막내아들은 표현력마저 서툴러 제 엄마와 누나로부터 핀잔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 막내와 지난주말 가까운 교외로 나가 부자만의 산행을 즐겼다.
가벼운 얘깃거리로 산을 오르면서 아들이 자기 뜻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기를 기다렸다. 두서없는 이야기 전개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치밀고 올라왔지만 인내하며 모든 얘기를 들어줬다. MC 유재석의 특기인 리액션도 이따금 건넸다. 아들도 덩달아 손짓발짓을 동원해 제 얘기를 적극적으로 풀어갔다. 초반에만 해도 연신 버벅거리던 녀석이 시간이 지나자 차분하게 제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아들의 표현력이 원래부터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일을 시작할 때 윗사람의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2013년 계사년, 대한민국의 새 정부가 출범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당선인이 중소기업에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때마침 언론에서도 중소기업과 관련한 좋은 정책적 제안을 다양하게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필자는 고민스럽다. 5년 전 이명박 정부 출범을 준비했던 인수위도 당시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부르짖었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눈앞의 현실인 탓이다.
2013년 경영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 암울하다. 대외적으로는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쏟아낸 양적완화책의 후유증이 가시화되기 시작했고, 대내적으론 급증하는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경제의 고삐를 부여잡고 있는 탓이다. 증시 상황 역시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인수위원들이 일부 성급한 이해당사자들로부터 설익은 정책적 압박을 받고 있다 한다. 그러나 급한 것이 우선이 될 수는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복지정책, 경제민주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정책 등은 급하다는 이유로 일방통행식으로 결정돼선 곤란하다.
특히 필자가 몸 담고 있는 투자자문업계도 금융투자산업의 한 축을 이루는 중소기업들이다. 워낙 업황이 좋지 못해 자본잠식 및 적자를 기록한 업체들이 많은 데다가 최근 금융감독당국의 감독이 강화되면서 올 봄이면 무더기로 퇴출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감이 깊다. 그런데, 중소기업을 챙겨야 한다는 어떤 분들로부터 투자자문업계를 도와줘야 한다는 의견을 듣지 못해 안타깝다.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자본시장법 통과가 무산되면서 금융감독당국이 기 마련한 헤지펀드, 사모펀드 참여 기준 완화 및 경영 컨설팅 등 새로운 먹거리 진출도 여전히 막혀 있다. 다른 방안도 '안된다'는 기준으로 바라보니 '찾아보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정부 출범까지의 촉박한 일정에 맞춰 자칫 밀어붙이기식으로 결정했다가 또다시 '잃어버린 5년' 나아가 '후퇴하는 5년'이라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기회 균등을 기반으로 한 경제민주화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시민 모두가 갈망하는 시대적 명제다. 경제민주화는 독재치하의 정치적 민주화 만큼이나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참된 경제 민주화를 위해서는 강자의 일방통행식 소통이 아니라 약자를 보살피고, 그들이 자신의 뜻을 소신껏 얘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분위기가 선행돼야 한다.
참된 소통을 통한 중소기업정책만이 우리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 인수위 시절이 향후 5년을 좌우한다. 곱씹어야 할 얘기다.
박성진 다원투자자문 대표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