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화두는 기동력이다. 출전 팀 모두 발 빠른 타자를 대거 발탁했다. 대표팀만 해도 이용규(KIA), 정근우(SK), 김상수(삼성) 등이 가세했다. 일본의 야마모토 고지 감독은 선전포고까지 했다. 예비명단을 발표하며 “다리를 이용한 야구를 고려했다”라고 밝혔다.
사카모토 하야토, 초노 히사요시(이상 요미우리), 오시마 요헤이(주니치), 히지리사와 료(라쿠텐), 혼다 유이치(소프트뱅크), 이토이 요시오(니혼햄) 등은 모두 호타준족이다. 38세의 마쓰이 가즈오(라쿠텐)도 여전히 베이스를 훔친다. 미국의 전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종명단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라이언 브론(밀워키), 셰인 빅토리노(보스턴) 등 발 빠른 타자들의 합류가 유력시된다.
기동력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득점을 내기가 그만큼 어렵다. 제2회 WBC에서 일본의 타격코치를 담당한 시노즈카 가즈노리는 지난달 4일 스포츠나비와의 인터뷰에서 “국제경기에선 홈런을 기대하기 어렵다. 좀처럼 한 방이 나오지 않아 부지런히 움직이는 타선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형태로든 1점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 2사 이후에도 안타를 칠 수 있고, 볼넷에 이은 도루 등으로 득점 찬스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류중일 감독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다. 그는 “단기전에선 어차피 상대 에이스의 공을 치기가 힘들다”며 “탄탄한 수비와 기동력 야구로 파워를 보완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빠른 발로 한 베이스를 더 가서 상대 수비를 흔들고, 상대에겐 한 베이스를 덜 주는 야구를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상대의 뛰는 야구를 막으려면 두 가지 요소가 충족돼야 한다. 탄탄한 수비와 효과적인 배터리 호흡이다. 특히 투수와 포수는 적잖은 부담에 시달릴 수 있다. 주자 견제, 볼 배합, 간결한 투구동작 등에서다. 류 감독은 이 점을 고려, 망설임 없이 39세의 진갑용을 대표팀에 불러들였다. 그는 “경험이 풍부한 선수니까 잘 해낼 것”이라며 “아직 선수 본인에게 알리지 않았지만 주장 임무를 맡기려고 한다”라고 했다.
주장을 자처한 이대호 대신 진갑용을 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진갑용은 2006년 제1회 WBC와 2008 베이징올림픽 등 많은 국제대회를 경험했다. 특히 금메달을 목에 건 베이징올림픽에선 주장을 맡아 선수들과 코치진의 원활한 교류를 이끌어냈다. 김경문 감독이 불펜에 있던 그를 통해 구위를 체크하고 투수를 중용했을 만큼 코치진의 믿음은 두터웠다. 신뢰는 5년 전보다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류 감독과 2000년부터 삼성 소속으로 한솥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진갑용에게 떨어진 임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상대의 기동력을 틀어막아야 한다. 대표팀 선발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은 “주전포수는 공격력이 좋은 강민호의 몫이 될 것”이라면서도 “결정적인 상황에선 진갑용이 마스크를 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내놓은 이유는 분명했다. 김 위원장은 “많은 경험을 갖춘 포수다. 기동력을 앞세운 상대에 빈틈을 주지 않으려면 패기도 좋지만 노련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대회에 비해 전력이 낮아졌다고 평가되는 투수진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김 위원장은 “류현진, 김광현과 같은 수준급 왼손 선발투수들이 빠졌다. 허리도 많이 빈약해 보인다”며 “진갑용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라고 밝혔다. 선수단의 리더는 물론 투수진의 멘토로 거듭나야 한단 의미. 실제로 이번 대표팀 명단에서 WBC에 처음 출전하는 투수는 8명이나 된다. 진갑용은 이들을 독려하며 분발을 유도해야 한다. 세밀한 플레이에 대한 논의도 빼놓을 수 없다. 상대의 기동력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려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은 필수다. 백업 기용이 예상되면서도 진갑용의 역할이 부각되는 근본적인 이유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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