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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정치 힐링'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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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정치 힐링'이 필요해 양재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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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25m 높이 아파트단지 굴뚝에서 맞은 사람이 있다. 서울 강남의 부촌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민모(61)씨. 지난해 정년(60세)을 넘긴 그는 62세까지 촉탁직으로 계속 일할 줄 알았다. 지난해 12월28일 돌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연말까지만 근무하라고 했다. 딱 3일 전 통보였다. 해고 사유는 근무태만. 졸다가 딱 한 번 자정 순찰을 깜빡했다가 쓴 시말서가 근거였다. 억울했다. 굴뚝에 올라갔다.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비록 최저임금도 못 받지만 '우리는 일하고 싶다'고.


그래도 그는 사흘 만인 2일 굴뚝에서 내려왔다. 함께 해고된 동료 14명 중 7명과 함께 복직됐다.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벌써 두 달 내지 석 달째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노동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현장이 세 군데다.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 송전탑,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주차장 송전탑, 충남 아산 유성기업 앞 굴다리가 그 현장이다.

새해를 따뜻한 직장과 집 대신 칼바람 부는 송전탑과 굴뚝에서 맞이한 노동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이어졌다. 12ㆍ19 대선이 끝난 뒤 벌써 4명째다. 그럼에도 현장에는 대화와 타협이 없다. 회사 측이 노조를 상대로 낸 158억원의 손해배상소송에 따른 대립과 갈등, 해고 노동자들의 생활고와 좌절, 대선 결과에 대한 실망이 맴돌 뿐이다.


이들이 지난 대선에서 누구에게 한 표를 행사했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찍은 51.6% 중 한 명이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찍은 48%의 일원이든. 다른 진보성향 후보를 지지했든, 투표를 하지 않았든 모두 틀림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누구를 찍었든 지난해에도, 새해가 밝은 지금도 다 힘들다. 5060세대 자영업자도, 2030세대 취업준비생도 아프긴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필요한 말은 "힘들죠?" "이해합니다"와 같은 진정성 있는 정치권의 힐링(healingㆍ치유)이다. 새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대변된 '안철수 현상'도 바로 이런 힐링 정치에 대한 목마름이었으리라.

페이스북이 집계한 지난해 화제의 키워드 1위는 '멘붕(멘탈 붕괴)'이었다. 이를 딛고 일어서기 위함인가. TV에선 '힐링 캠프'가 새로운 예능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가요계에선 '힐링이 필요해' 등 따뜻한 음악이 사랑받았다. 베스트셀러 1위도 힐링해주는 책,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풀려라 5천만, 풀려라 피로' 등 광고카피도 힐링 열풍을 확인시켰다.


이처럼 힐링이 대세인데도 불모지가 있다. 바로 정치권이다. 대선을 앞두고선 앞다퉈 TV 프로그램 힐링 캠프에 나오더니만, 선거가 끝나니 그뿐 아무도 아픈 국민을 힐링하려 들지 않는다. 대선에서 이긴 쪽은 포용이 없다. 진 쪽은 반성이 없다. 선거 때 여야 가리지 않고 그토록 부르짖은 대통합과 포용, 소통은 찾아보기 어렵다.


18대 대선 날 개봉한 영화 레미제라블. 개봉 18일 만에 누적관객 400만명을 돌파하며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장장 2시간38분 동안 숨죽이며, 때때로 눈시울을 적시며 보다 영화가 끝나면 박수치는 것은 대선 이후 실의에 빠진 2030세대에게 일종의 힐링,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 1832년 6월 공화정 혁명에 실패한 뒤 거대한 바리케이드 위에서 합창곡 '민중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부르며 서 있는 프랑스 사람들.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내일이 오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리라'고. 유난히 추운 올 겨울,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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