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아시아를 정복한 '철퇴축구'의 어원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11월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울산현대의 K리그 6강 플레이오프. 대다수 전문가들은 홈팀 서울의 우세를 점쳤다. 객관적 전력부터 앞섰다. 서울은 정규리그 3위, 반면 울산은 6위였다. 데얀-몰리나로 이어지는 막강 화력에 홈경기 이점까지 더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반대였다. 울산의 3-1 완승이었다. 조직적 수비로 뒷문을 탄탄히 하는 동시에 결정적 한 방으로 상대를 무너뜨렸다. 이후 준PO와 PO에서 수원(4위)과 포항(2위)까지 연파하며 승승장구했다. 비록 챔피언결정전에서 전북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당시의 저력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에 팬들은 울산에 '철퇴 축구'라는 애칭을 붙였다.
1년 뒤 아시아 정상의 지위와 함께 다시 맞은 서울전. 울산은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39라운드에서 서울에 1-3으로 완패했다. 1년 전과 정반대의 결과였다. 전반에만 3골을 허용하며 맥없이 무너졌다. 전·후반 슈팅수는 14-12로 앞섰지만 내용면에서 일방적으로 밀렸다.
예견된 결과였다. 이날 울산은 철퇴 축구의 핵심 요원들을 제외한 채 백업 멤버 위주로 경기에 임했다. 체력 저하와 부상 등이 원인이었다. A대표팀에 차출됐던 이근호, 김신욱, 김영광을 비롯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을 치른 곽태휘, 김승용, 하피냐 등이 모조리 명단에서 빠졌다. 반면 서울은 호주전을 치른 하대성과 고명진까지 투입시키며 총력전을 펼쳤다.
씁쓸한 패배에도 울산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김호곤 울산 감독은 "비록 경기에는 졌지만 선수들 모두 최선을 다했다"라며 "내년 시즌에 대비해 선수활용의 폭이 넓어진 점에 만족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측면 수비수 김영삼 역시 "서울전은 핵심 선수들이 모두 빠진 상황이라 쉽지 않은 경기를 예상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내년 ACL 출전권이 걸린 3위 경쟁부터가 그렇다. 울산은 현재 16승11무12패(승점 59)로 리그 5위. 막판 5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3위 수원(승점 68)과의 승점 차는 9점이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는 판단이다.
김 감독은 "이번 주말 수원전에는 부상 선수들이 정상적으로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소 격차가 있지만 두 경기 정도 결과를 지켜보면 역전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3위 자리 탈환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선은 더 먼 곳으로도 향한다. ACL 우승과 함께 대회 출전권을 획득한 2012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이다. 첼시(잉글랜드), 코린티안스(브라질), 몬테레이(멕시코) 등 세계 정상급 팀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기회다.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다.
김 감독은 "(클럽월드컵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중요한 대회"라며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라고 의욕을 보였다.
선수단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영삼은 "ACL 우승 이후 팀 분위기가 상당히 긍정적"이라며 "남은 경기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클럽월드컵에 대비하자는 의욕이 넘친다"라고 말했다. 내년 군 입대를 앞둔 수비수 이재성 역시 "울산 소속으로 치르는 남은 일정이 내게는 모두 소중하다"라며 "클럽월드컵을 준비한다는 자세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라고 다짐했다.
김흥순 기자 sport@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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