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스캔들로 주목받는 '명예영사' 면면 살펴보니
북미 15명 등 전세계 150명
왕성한 친선활동으로 정치·사회 영향력 커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미국 중앙정보국(CIA) 전 국장의 불륜스캔들에 연루된 질 켈리가 올해 한국의 명예영사(honorary consul)로 임명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명예영사 제도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 각국에 150여명 정도가 임명돼 있으며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가진 상태에서 이름을 걸어놓고 친선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정계를 뒤흔든 이번 성추문에 핵심인물로 지목된 켈리가 명예영사로 임명되는 과정이 석연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할업무를 담당하는 한국 정부의 외교통상부도 난감해 하고 있다.
15일 외교부가 공개한 주요국 명예영사 현황을 보면 북미지역에는 켈리를 포함해 현재 명예영사 15명이 임명돼 있다. 필라델피아 명예총영사로 임명된 해리스 바움은 2006년 11월 임명돼 현재까지 직을 수행하고 있다. 변호사인 그는 임명 후 관할지역을 중심으로 참전용사나 코트라 관계자 면담을 비롯해 현지 한국공관이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참석했다. 미국 오레곤지역을 관할하는 존 베이츠는 현지 대학이사로 미국 정부 관계자를 만나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한 회의를 하는 등 양국 관리들과 꾸준히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코메리카은행 수석부사장으로 있는 데이비드 로덴이 디트로이트 명예영사로, 순회법원 판사로 있는 주디 드레이퍼는 세인트루이스 명예영사로 임명돼 있다. 이밖에 오클라호마시티 명예영사로 로날드 노릭 전 오클라호마 시장이, 뉴올리언스 명예영사로 윌리엄 란겐스타인 변호사가, 위니펙 명예총영사로는 데이비드 워커 전 하원의원이 임명돼 양국친선활동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외교관은 "명예영사는 해당지역 유력인사 가운데 선임하기 때문에 경제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사들이 대부분"이라며 "전직 관료나 법조인, 사업가, 교수 등이 많으며 한국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82년 임명돼 현재까지 명예총영사를 맡고 있는 버튼 랜디는 현지 변호사로 한인회 관련 행사에 참석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켈리가 올해 초 한국명예영사를 신청하면서 랜디와 관할지역이 겹치는 문제가 발생하자 한미 정부가 협의해 켈리가 플로리다주의 탬파지역만 맡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문제가 불거지면서 켈리의 임명과정에 대해 묻자 외교부 관계자는 "개인적인 내용이라 공개하기 어렵다"면서 "내부적으로 논의해 관련내용 공개여부를 정하겠다"고 말했다.
켈리가 임명 후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켈리가 한미FTA에 대한 (미국 정치권의) 지지를 끌어내는 일을 도왔으며, (한덕수 전) 주미 한국 대사가 플로리다주 탬파를 방문했을 때 지역 인사들과의 만남도 주선했다"고 보도한 점을 미뤄보면 한미간 통상현안에 대해 양국 정부관계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면서 현지 정계에서 인맥을 넓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켈리는 최근 스캔들 문제가 불거지자 명예영사로 외교관의 특권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7년 발효된 영사관계에 관한 빈협약에 따르면 명예영사는 신체불가침이나 재판권 및 증언면제 등 영사로서의 특권이 있긴 하나 전업 외교관에 비해서는 제한적이다.
임기나 보수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명예영사의 임명 및 직무범위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보면 명예영사는 별도로 지급되는 보수는 없으나 각종 사무처리에 필요한 경비를 연간 3000달러 내에서 지원해준다. 재외국민 보호를 비롯해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는 교류 알선, 예술문화 교류활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직무가 정해져 있으며 각종 활동실적에 대한 평가는 연간 2회 외교부장관에게 해야 하는 규정도 있다.
정부는 미국 지역 외에도 전 세계에 146명(10월말 기준)의 명예영사를 임명했다. 일본 가고시마 명예총영사로 있는 심수관씨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넘어간 조선인의 후예로 현지에서 도예일을 하고 있다.
마이애미 명예총영사인 버튼 랜디나 포르투갈 포르투 명예영사로 임명된 안토니우 드 베자 드 사 뻬리이라는 1980년대 초 임명돼 30년이 지난 현재까지 임기를 연장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덕기(솔로몬제도), 홍종국(바누아투)씨와 같이 재외동포로 현지에서 한인회장이나 자동차대리점을 운영하면서 명예영사로 임명된 사례도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유럽이나 중남미지역 등 현지에 공관이 없는 곳 위주로 명예영사를 둬 한국과의 친선활동을 장려하고 있다"며 "경제ㆍ사회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해외 각지에서 명예영사로 일하겠다는 사람도 자연스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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