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은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시행된 일괄 약가인하 제도에 업계는 그야말로 '비상시국'에 빠졌다.
국민과 정부의 관심은 약가를 인하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집중됐었다. 그러나 일단 약가가 떨어지고 나자 그 여파로 제약업계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적만 보면 상황은 처참하다. 지난 분기 제약사들의 실적을 살펴보니 매출은 겨우 제자리를 지켰고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난 곳이 흔했다.
실적이 악화되자 제약업계는 수익성 창출이 어려운 제품의 구조조정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구색 맞추기, 백화점식 제품 구성으로는 위기 상황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또 내수부진까지 겹친 악재를 극복하기 위해 신성장동력 찾기에도 분주하다. 업체들은 유전체분석, 바이오기업 인수, 새로운 사업 진출 등 다각도의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차별화, 특성화된 제품을 개발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맞춰 정부도 제약산업 발전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많은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위기극복의 길은 정부의 지원만으로 불가능하다. 제약업계 스스로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 제약업계는 내수시장이 포화인 상태에서 세계 시장 진출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만이 살 길이라는 데 이견을 두지 않는다. 수출 중심의 시스템으로 체질을 개편해야 한다. 이를 위한 필수 조건은 바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신약을 개발하는 일이다.
그러나 신약개발을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 시간, 전문성 등 지속적 투자가 필수적이다. 만약 10만개의 후보물질을 발굴했다면 그 중 100개가 임상시험이란 관문을 통과한다. 또 그 중 10개 정도가 상용화되고 2개 정도가 이익을 창출한다. 확률로 보면 0.002%도 되지 않는다.
시간과 비용도 큰 부담인데, 평균 10년 정도의 연구기간이 걸리며 많은 비용 중 약 80% 정도가 임상시험에 소요된다. 이처럼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기까지는 장기적 안목을 가진 투자 결정과 인내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세계 의약품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제약산업 육성정책을 펼쳤다. 경제 대국인 일본도 1970년대 신약개발을 목표로 제약산업을 집중 지원했고 현재 내수 시장보다 해외 시장에서의 매출이 더 많은 신약 선진국이다. 스위스는 글리벡을 개발한 노바티스, 타미플루를 개발한 로슈 등 거대 다국적 제약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이 신약개발 강국이며 제약산업을 전략적으로 적극 육성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제약산업의 수준은 어떨까. 제네릭의약품(복제의약품), 제형변경의약품, 개량신약, 천연물신약 등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110년 역사에 아직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세계 최고 수준의 인적 경쟁력이 있다. 이런 저력에 정부의 지원과 국민의 관심이 더해진다면, 그리고 제약업계 스스로 온 힘을 다해 공격적으로 연구개발(R&D)에 나선다면 글로벌로 가는 열쇠 '신약개발'의 날은 머지않아 달성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나라 제약업체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투자를 멈추지 않고 '국민의 건강증진'이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기도 하고 일부 부작용도 있었다. 그렇다고 제약업계가 가진 사명의 숭고함이 함께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제약업계는 국민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이관순 한국제약협회 연구개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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