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여 만에 국내에서 ‘사커루’(호주 축구 애칭)를 볼 수 있게 됐다. 대한축구협회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정한 A매치 데이 11월 14일에 호주대표팀을 불러들인다고 18일 발표했다. 2015년 아시안컵(1월 4일~26일, 호주)을 앞두고 호주에서 친선 경기를 갖는 방안도 함께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호주는 2011년 1월 단독으로 개최를 희망, 2015년 아시안컵을 유치했다. 오세아니아 대륙에서 대륙별 선수권대회인 아시안컵을 치르는 건 축구 팬이 아닌 이들에게 다소 의아할 수 있다. 이들이 아시아의 나라들과 월드컵 티켓을 놓고 경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주는 1974년 서독 대회에서 자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한 이후 2006년 독일 대회까지 오랜 기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악전고투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 예선에서 호주는 아시아 나라와 한 조에 묶여 최종 예선에 나섰으나 한국, 이란(본선 출전), 쿠웨이트에 뒤져 본선을 밟지 못했다. 1982년 스페인 대회 예선도 아쉬웠다. 아시아 나라와 한 조에 든 데다 출전권이 2장으로 늘어 본선 행을 이루는 듯 했으나 1차 예선(뉴질랜드 호주 인도네시아 대만 피지)에서 같은 오세아니아연맹(OFC) 소속인 뉴질랜드에 1무1패로 밀리며 조기 탈락했다.
호주는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오세아니아연맹에 0.5장의 출전권이 배정돼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다. 첫 번째 기회는 놓쳤다. 유럽의 스코틀랜드에 1무1패로 밀려 본선에 나서지 못했다. 두 번째 기회였던 19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선 오세아니아 대륙 예선에 나선 이스라엘에 뒤져 1차 예선에서 조기 탈락했다. 엉뚱하게도 OFC를 대표한 이스라엘은 대륙 간 플레이오프에서 남미의 콜롬비아에 1무1패로 밀려 OFC는 또다시 월드컵 출전국을 내지 못했다.
1994년 미국 대회에서 OFC에는 0.25장의 출전권이 배정됐다. OFC 소속 나라들은 월드컵에 나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오세아니아 1위 호주는 대륙 간 플레이오프 첫 판에서 북중미의 캐나다에 1-2로 졌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 2-1로 이겼다. 이어진 승부차기 결과는 4-1 승리. 하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만난 건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였다. 호주는 첫 대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두 번째 대결에서 0-1로 져 본선 문턱에서 물러났다.
1998년 프랑스 대회에서 호주는 아시아의 이란과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이번에서 본선 행은 불발됐다. 원정에서 1-1, 홈에서 3-3으로 비겼는데, 원정 다 득점 원칙 아래 이란에 밀렸다. 2002년 한일 대회에서도 불운은 그치지 않았다. 남미의 우루과이를 홈에서 1-0으로 격파했지만 원정에서 0-3으로 져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렸다.
호주는 2006년 독일 대회에서 아쉬움을 씻어냈다. 상대는 공교롭게도 우루과이. 원정에서 0-1로 졌지만 홈에서 1-0으로 이겨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했다. 천신만고 끝에 거둔 월드컵 본선 진출. 도전장을 내민 지 32년 만에 거둔 쾌거였다.
지난 역사에서 알 수 있듯 2006년 이전까지 ‘사커루’에 월드컵 대륙 간 플레이오프는 악몽이었다. 이에 호주는 2006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 이사를 감행했다. 출발은 순조롭다. 호주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에서 일본, 바레인,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등과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A조에 배치됐다. 남긴 성적은 6승 2무. 조 1위로 본선에 오르며 이사한 보람을 만끽했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일본에 이어 준우승을 거두는 등 국제대회에서 잇따라 승승장구한다.
월드컵과 관련해 오랜 기간 힘든 시간을 보낸 호주지만, 1970년대를 전후해서는 한국 축구의 발목을 몇 차례 잡았다. 중·장년 축구 팬들에게 ‘사커루’는 애물단지였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1차 예선(서울운동장)에서 한국은 일본에는 1승1무(2-0, 2-2)로 앞섰으나 호주와의 1차전에서 1-2로 졌다. 2차전마저 1-1로 비겨 2차 예선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호주는 2차 예선에서 아프리카의 로디지아를 2승1패로 따돌렸으나 최종 예선에서 뉴질랜드를 물리친 이스라엘에 1무1패로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월드컵에 가지 못하면서 한국에 재를 뿌린 꼴이었다.
이어 벌어진 1974년 서독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은 호주 때문에 또 한 번 땅을 쳤다. 1973년 10월과 11월 시드니와 서울을 오가며 벌어진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각각 0-0과 2-2로 비겼다. 11월 13일 홍콩에서 벌어진 3차전에서 대표팀은 0-1로 져 본선 문턱에서 좌절했다.
예상이 가능했던 시나리오였다. 한국은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홈경기에서 전반 15분 김재한, 27분 고재욱의 연속 골로 2-0 리드, 월드컵 본선에 바짝 다가서는 듯했다. 하지만 전반 29분 불제비치에게 추격 골, 후반 3분 라르츠에게 동점 골을 내줘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제3 지역인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선수들은 이미 전의를 잃고 있었다. 이때 서독에 갔으면 한국 축구 월드컵 출전 역사는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호주가 AFC로 이사를 온 뒤에는 지난해 1월 아시안컵 조별 리그 C조에서 1-1로 비긴 게 유일한 전적이다. 호주가 뿌리는 재에 다시 당할 한국 축구가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이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